[경제시평―권영준] 경제정의가 모두를 살린다 기사의 사진

불쾌지수가 피크로 치닫는 한여름보다 더 국민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대한민국 여의도의 난장판을 목도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온통 짜증나는 뉴스 가운데에서 지난 주간에 우리로 하여금 너무나 부럽게 만든 것이 바로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한 2명의 미국 이민자 출신의 여기자 구출사건이었다. 그것도 말을 아끼고 국비 한 푼 안 쓰고 자신의 인맥을 동원한 절묘한 방법으로 말이다.

이런 와중에 국내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 중에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읽었다는 것이다.

니버가 누구인가. 미국 자동차 산업과 노동운동의 메카인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현장 목회를 체험하고 제1,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모두 경험하면서 미국의 정신적 기류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영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그는 미국 주류 정치영역의 밑바탕에 흐르는 민주주의와 도덕성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다. 그는 "불의를 향한 인간의 속성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고, 또한 정의를 향한 인간의 양심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다"라는 명문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영향력을 인정받아 아인슈타인과 같은 노벨상을 받은 대가들만이 소속되거나 초청되는 프린스턴 대학의 고등학문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에 신학자의 신분으로 연구하는 특별한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저술한 동 저서에서 그는 교육을 통해서 개인의 도덕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그들이 속한 집단적 사회는 매우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착한 사람들이 죄성과 갈등으로 물든 사회 속에서 끔찍한 악행을 자신도 모르게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니버는 이러한 갈등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그 어떠한 정의도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결국 경제정의임은 우리의 경험이나 역사 속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성경은 이를 증거하고 있다. 또한 경제정의는 사회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경건이나 구제로 해결할 수 없고 오로지 제도개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반년이 더 넘었다. 피해자들의 가슴에 흐르는 피눈물도 말라 더 이상 흐느낄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용산참사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재개발정책으로 인해 길거리로 내쫓길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생존권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몰라라 하는 사이에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급기야는 폭력과 공권력이 변질되어 대형참사로 빚어진 것이다.

현재 정치적 이념법률인 미디어법의 난투극으로 인해 국회는 기능이 정지되어 있다. 현행 재개발법에 의하면 앞으로 얼마든지 제2의 용산참사는 재발될 수 있다. 지주만 배불리고 세입자의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천민자본주의적 재개발법이 하루 속히 개정되는 제도개혁만이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을 수 있다.

민주주의와 도덕성 절실하다

얼마 전 많은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연이어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해서 많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시국선언을 하였다. 투표민주주의를 통한 정치민주화는 이루었지만 민주적 실질정치와 양극화를 증폭하는 경제민주화의 후퇴를 우려한 충정이었다.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인 경제양극화와 사회분열 현상도 실질적 제도개혁에 의한 진정한 경제정의가 이루어진다면 해결될 수 있고 나아가 성장잠재력 증대를 통한 선진화도 가능하다. 이러한 때에 대통령이 니버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아 얼마 전부터 강조하는 중도서민지향론이 진정성을 갖는다면 우리사회도 파랑새를 가슴에 품을 수 있다.

권영준(경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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