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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칼럼] 지역 평판 듣기 거북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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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고향 선후배 20여명과 함께 수원 화성 일대 유적지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참석자 대부분은 수도권에 살고 있지만 영호남에 내려가 근무하는 공직자도 있어 지역 사정을 전해 들으며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뒤풀이를 겸한 식사 자리에선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이 화두로 떠올라 고향 충청도를 보는 타지역 주민들의 시각은 어떤지 관심이 쏠렸다.

지방대학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는 한 후배는 '충절의 고향'이라는 충청도 이미지는 옛날 얘기고 날이 갈수록 비판적인 시각이 타지역에서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역대 대선을 비롯한 주요 선거에서 정체성이 불분명한 특정 정파의 입김이나 세종시 건설 등 선심성 공약에 따라 줏대없이 표가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충청인을 소신 없는 부류로 보는 시각이 퍼져 있다는 지적이다.

몇몇 사람들의 말만 듣고 전체를 평가한다는 것은 자칫 오판을 부를 소지가 크다. 하지만 그 교수가 전한 타지역의 평판이 근거 없는 곡해라고 딱히 반박할 만한 구석을 찾기도 어려웠다. 지역감정과 이기주의에 몰입한 분위기를 자성하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대화라서 이어진 평가는 더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고향 모임이기에 이런 혹평이 가능했지 다른 지역 출신이 그토록 쓴소리를 했더라면 당장 멱살잡이가 벌어졌으리라.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말이 갈수록 거칠어져 독기만 난무하는 풍토가 걱정이다”

울산 출신의 소설가 오영수는 30년 전 지역별 특질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글을 발표했다가 큰 고초를 겪었다. 감칠맛 나는 언어로 향토 정서를 표현했던 그는 1979년 문학사상 1월호에 지역별 특성을 묘사한 '특질고(特質考)'를 냈는데 이 글이 특정지역 민심을 자극해 거센 반발을 샀다. 실의에 빠진 오영수는 지병이 도져 넉달 뒤 타계했다.

지역감정의 응어리를 자극하는 언행은 작가의 순수한 문학적 접근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금기로 굳어졌지만 이를 교묘하게 역이용하려는 정치인과 아둔한 추종자들이 아직 적지 않다. 대선이나 총선이 가까워지면 지역 지지기반을 다지려는 후보 측에서 앞장서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발언과 함께 근거 없는 소문을 퍼트려 민심을 자극하는 게 전형적인 수법이다. "우리가 남이가" "싹쓸이 투표" "충청도 핫바지" 등 지역 결속과 상대 견제를 노린 말장난이나 흑색선전이 역대 선거에 자주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소 누그러지는 듯하던 지역감정이 최근 여야대치 정국 속에서 다시 확산될 조짐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공직사회에서 호남 출신들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들었다"며 호남소외론을 제기해 논쟁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장광근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차관급 이상 정무직 인사 자료를 공개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정 대표를 "도태돼야 할 정치인 1호"라고 맹공했다. 두 당은 각각 다른 자료를 인용해 연일 막말 공세를 거듭하고 있다. 자유선진당 측은 최근 세종시 위상과 관련한 논란이 거듭되자 또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느냐"며 정부를 비난했다.

지역감정을 지지기반 확대에 이용하려는 정략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말솜씨가 갈수록 거칠어져 독기만 난무하는 풍토가 걱정이다. 응어리진 민심에 독설로 증오와 혼란을 더해 무엇을 얻으려는 건가. 불안한 지역 맹주 자리를 서둘러 상속받겠다는 얄팍한 계산인가 또는 한 자리를 의식한 과잉 충성인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문병했다. 때로는 협력하고 반목하면서 이 나라 민주화를 이끌어온 두 거목이 마지막으로 화해함으로써 지역감정의 앙금을 풀어보려는 자리였다. 병세가 깊어 직접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두 분의 화해 선언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후배 정치인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지역 주민들도 요설에 휩쓸려 격동하는 어리석음에서 빨리 벗어나야 저평가를 면할 수 있다. 무시당하는 게 억울하다면.

수석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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