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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출판] 헌신·사랑밖에 몰랐던 짧은 삶… ‘그 청년 바보의사’

[기독출판] 헌신·사랑밖에 몰랐던 짧은 삶… ‘그 청년 바보의사’ 기사의 사진

그 청년 바보 의사/안수현 지음/아름다운사람들

바보 같은 젊은 의사가 있었다.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소문난 명망가나 의료계의 리더도 아니었다. 의학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졸지에 세상을 떠나자 서울 영락교회 청년부 등 조문객 4000여명이 줄을 잇고 눈물을 흘렸다. 병원 매점 앞에서 구두를 닦는 아저씨부터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노점상 할머니까지 눈물을 훔쳤다. 그가 생전에 피붙이처럼 돌봤던 사람들이다.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그를 '참의사'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 제일로 꼽는 것은 그가 참의사였다는 사실입니다. 환자의 살이 베일 때 아프겠거니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베인 것처럼 아파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는 달랐어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마치 내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그는 가운을 입고 진료실을 지켰다. 하지만 동료들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에게 지고의 가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훈련을 나가면 병사들과 함께 지냈다. 앰뷸런스 안에서 생활하면 좀 더 편하고 안전했을 텐데, 그는 풀밭에서 사병들과 함께 지냈다. 자신의 몸보다 부하들의 건강을 먼저 챙겼다. 그는 예배를 사랑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억누를 수 없는 예배자'의 열정을 느꼈다. 어떤 고난이 와도 깨뜨릴 수 없는 절대자를 향한 불 같은 경배심이 넘쳤다.

"너 오늘 당직 아냐?" "바꿨어, 안수현이랑." "뭐야, 지난번엔 나랑 바꿨었는데." "걔 주일엔 곧 죽어도 교회 가서 예배 드려야 된대. 그 시간 벌려고 닥치는 대로 당직 서는 거야. 딴 건 다 양보하는데 그건 안 된대." "성가대도 한다면서?" "인턴 때도 1년 52주 가운데 딱 한 번 교회에 못 갔단다. 믿어지냐?" "참 특이해. 아무도 못 당할 걸."

2005년 12월18일 주일 밤.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된 그의 몸이 무섭게 부어올랐다. 아버지 안봉승 장로는 중환자실 침대 위에 홀로 누워 있는 아들을 애타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아들은 벌거벗은 모습으로 괴롭게 숨을 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삶과 죽음 사이에 걸쳐 있는 자식을 두고 아버지는 병원을 나왔다. 겨울밤, 찬바람 속을 묵묵히 걸었다. "주여, 혹시 제가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다면 용서하소서. 혹시 제 마음에 남을 향한 원망과 미움이 한 점이라도 남아 있다면 용서하소서."

새해가 되자 그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선후배 의사들이 모두 힘을 모아 심폐소생술에 들어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환자실은 그가 토해낸 피로 물들었다. 1월5일 밤 10시30분에 청년 의사는 바보같이 먼 길을 떠났다. 만 33세였다. 영정사진이 걸리기 전부터 장례식장은 물밀듯 밀려오는 조문객으로 들어설 곳이 없었다. 예배와 찬송이 넘쳤다. 그의 장례식은 마치 결혼식 같았다. 한 신실한 청년을 예수님께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혼례식이었다.

고려대 의학과 91학번 내과 전문의 안수현(1972∼2006). 그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충혼당에서도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 맨 아래 줄에 안치돼 있다. 그는 하나님을 삶의 비전으로 삼고 예수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아로새기며 진리의 구도자로, 사랑의 전파자로 짧지만 굵게 살다가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을 펴냈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참의사였기 때문입니다."(아름다운 사람들·안수현·1만2000원).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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