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정식] 주인의식과 책임감 기사의 사진

며칠 전 서예가 원곡(原谷) 김기승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유묵전에 다녀왔다. 예술의전당과 원곡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 전시회에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쳐 격동기를 살아온 그의 예술 혼이 잘 드러나 있었다. 절도 있고 웅장한 원곡의 필체는 큰 감명을 주었다.

한 시간 남짓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새삼 큰 충격을 준 것은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당신은 주인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도산의 글 내용은 이 시대에 더욱 큰 뜻을 담은 열변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묻노니 여러분이시여, 오늘 한국에 주인 되는 이가 몇 분이나 되십니까"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논설이었다.

새삼 충격을 준 島山의 논설

안창호 선생은 민족의 주체성이 먼저 확립되어야 독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항상 강조하였다. 독립이 되더라도 주인 의식이 없으면 그 주체성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도 동시에 강조하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자가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그 민족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있는 이는 주인이요, 책임감이 없는 이는 객"이라고 지적하며 진정한 의미의 주인은 민족 사회를 위해 분노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지니는 데 있다고 역설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그 집안 일이 잘되거나 못되거나 그 식구를 버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지식과 자본의 능력이 짧거나 길거나 자기의 있는 능력대로 그 집의 형편을 의지하여 그 집을 유지하고 발전할 만한 계획과 방침을 세우고 자기 몸을 죽는 순간까지 그 집을 맡아가지고 노력하는 이라야 비로소 참 주인입니다."

이제 도산이 그토록 갈망하던 해방을 맞은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을 겪었고 이질적인 이념과 정치 체제로 국토와 국가가 동강 난 지 반 세기를 훌쩍 넘겼다. 아직도 통일의 실마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채로 갈등의 골만 깊어갈 뿐이고 진정한 민주화와 산업화의 길은 유난히 고달프고 험난하기만 하다. 우리 민족이 지금 진정한 의미로 이 땅의 주인이 된 것인지 도산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원곡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도산은 책임의 주체로 '나'를 특히 강조하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주인이지만 이 말은 "책임 전가나 회피에 이용될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책임에 대해서는 내 것이라 하고 영광에 대해서는 우리 것이라 하는 것"이 도덕에 맞는 언행임을 지적했던 것이다.

원곡은 또한 이승만 대통령도 추모회 식상에서 그를 태산과 같은 큰 인물로 추앙했음을 전해준다. 그는 어느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오늘의 국내 국제 정세가 나날이 달라지는 이때에 도산 선생이 있었더라면 대립에서 화해, 분리에서 화합, 분열에서 통합으로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흐뭇한 웃음의 선물을 주셨으리라 믿는 마음 간절하다."

성숙한 사회는 ‘주인’ 많아야

현실적으로 책임감은 그 어떤 개인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한 국가의 국민이고 사회에서 자기 일을 맡고 있으며 또 한 가족의 식구들이다. 때로는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사회의 번영을 위해 원하지 않는 직책을 맡기도 하며 가족구성원으로서 어려운 일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 만약 이러한 경우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입장만을 고려하여 책임을 회피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적대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무엇보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 아니라 '객인'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주인이 아니라 객인으로 가득한 사회를 어떤 의미로도 '성숙한 사회'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이 도산 선생의 글을 음미하며 그렇게 오랫동안 그 글 앞에 서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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