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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64주년… 일제 만행의 현장 731부대 유적지를 가다

광복절 64주년… 일제 만행의 현장 731부대 유적지를 가다 기사의 사진

생체실험에 스러져간 이들의 절규 들리는 듯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과거 일을 잊지 말고 훗날에 교훈으로 삼는다).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 남쪽 24㎞ 핑팡(平房)에 위치한 일본 관동군 세균전 부대 731 부대(일명 이시이 부대) 유적지 본관 건물(기념 박물관) 현관 입구 좌우에 써 있는 말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구절이다. 중국 장쑤성(江蘇省) 난징(南京)의 남경대학살 기념관 마당 벽도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중국은 일본 제국주의 만행 현장을 보존하고 그곳에 이 글귀를 써놓고 중국 인민들에게 일본의 만행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 히틀러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 400만명을 학살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죽음의 수용소'를 쓴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말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양적인 면에서 인간의 잔악함을 보여주는 장소라면 731부대는 질적인 면에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곳이다.

일본은 1932년 육군 관동군 소속으로 생화학전 연구를 위해 731 부대를 하얼빈에 설립해 1945년 패망할 때까지 치명적인 대량 살상 생물·화학 무기를 연구하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극악한 생체 실험을 했다. 암호명 '마루타(통나무라는 의미)' 특별 계획은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인근 국가 민간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고 잔인하게 영아 노인 임산부까지 실험 대상으로 썼다. 이 부대를 '이시이 부대'라고 하는 이유는 교토제국대학 의과대 출신 군의관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중장이 초대 사령관으로 부임해 부대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731 부대 기념관은 입구부터 어둡고 스산했다. 적어도 한국인을 포함해 1만명 이상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생체 실험으로 죽어간 731 부대 본관 건물은 패전 후 중학교 건물로 사용되다가 일본군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념관으로 바뀌었다. 4층 건물 각 방은 731 부대 터에서 발굴한 각종 생체 실험 도구와 기구들, 각종 문서, 사진, 그리고 상황을 재연한 밀랍 인형들로 꾸며졌다. 특히 인체 실험에 사용했던 수술용 칼과 가위, 장기를 적출해 걸어 놓았던 걸개, 피를 받아 놓았던 용기, 발목을 붙잡았던 족쇄 , 물고문 기구 등 만행의 증거물들이 가득했다.

일본군은 이 부대에서 살아 있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해부, 동상 실험, 전염병 실험 등 30여 가지 생체 실험을 했다.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고 출혈 연구를 위해 팔다리를 절단하고 그 잘라낸 것을 다른 쪽에 붙여보기도 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뇌 폐 간 등을 잘라내기도 했다. 살아 있는 이들에게 화염방사기를 분사하기도 했다. 또한 각종 세균을 주사하고 벼룩을 이용해 세균을 대량으로 감염시키기도 했다. 팔다리를 몽둥이로 내려쳐 골절시킨 후 얼마나 견디나를 보기도 했고, 영하 50도의 추위에 발가벗겨 밖에서 걷게 했으며 인체 부위마다 피부를 도려내고 콜레라균 탄저균 매독균을 집어넣기도했다.

필자를 안내한 여성 해설자는 일본군 군의관들이 희생자 목을 매달아 죽기까지의 시간을 쟀고, 신장에 말 소변을 투여하고, 극 저온과 고압의 방에 마루타를 넣어 관찰하고 온도와 화상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불이나 뜨거운 물에 넣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심분리기에 넣어 죽을 때까지 돌리기도 하고 바닷물을 혈액에 직접 주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영하 40∼50도 추위에 발가벗긴 다음에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쏘아 몇 명까지 죽는가를 관찰하는 실험도 했다. 기념관 4개 층의 각 방에는 밀랍 인형으로 당시 생체 실험 광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일본군은 731 부대 말고도 생화학전 연구를 위해 베이징 장춘 난징 광저우을 비롯해 심지어 싱가포르 등지에 생체 실험 부대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군은 731 부대에서 배양한 세균을 갖고 세균폭탄을 만들어 하얼빈 근처 마을을 대상으로 생체 피폭 실험을 한 뒤 저장성 닝보, 산시성 허베이, 산둥성, 허난성 등에 투하해 많은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미군을 대상으로 실전에 활용하지는 못했다. 기념관에는 실제로 일본군이 투하했던 세균폭탄 실물이 전시돼 있고 후퇴할 때 파괴했던 폭탄 파편들이 남아 있다.

마루타로 희생된 사람들 숫자는 약 1만여명으로 추정되나 중국의 노력으로 명단이 밝혀진 희생자는 1463명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 희생자는 심득룡 이청천 이기수 한성진 김성서 고창률씨 등 6명이다. 인간 백정 이시이 시로는 전후 도쿄 국제군사법정에서 마루타는 총 3850명이었고 그 가운데 중국인은 3034명, 러시아인은 562명, 한국인은 254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기념관 출구 복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놓여 있었다. 조선족 심득룡과 이청천씨 이름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 살았는지 가족은 누구인지 구체적인 인적 사항은 없다.

조선족 기념관장 김성민씨는 지난 20년 동안 731 부대 만행을 조사해 폭로한 증인이다. 그는 731 부대 터에서 수많은 증거물들을 발굴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희생자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그들의 수고로 1463명을 찾았고 이 가운데 318명은 이름과 신분, 주소 등이 구체적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이 만행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이 부대가 히로히토 일왕의 칙령으로 설립된 유일한 부대라고 한다. 이 부대에는 일왕의 막내 동생이 장교로 복무했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은 히로히토 일왕이 이 부대의 존재를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몰랐을 가능성은 적다. 더 괘씸한 것은 이 부대의 책임자였던 '인간 백정' 이시이 중장이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고 67세까지 살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그것은 이시이가 일본 패망 후 인체 실험 자료를 모두 미군 측에 넘겨주면서 러시아에는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이 그를 기소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념관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사죄의 글을 남기고 갔다. 731 부대에 근무했던 많은 인사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으나 정작 최후의 책임을 져야 할 일본 왕이나 일본 총리는 이 부대의 존재와 만행에 대해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731 부대 유적지를 돌아보고 나오며 가슴과 머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며 기념관 입구에 새겨진 그 한마디처럼 일본의 만행에 대해 '전사불망 후사지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Key Word 731부대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있던 일본 관동군 휘하 세균전 부대. 1936년부터 45년까지 약 3000명의 전쟁 포로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잔혹한 생체 실험과 세균 실험을 자행했다. 부대장이었던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 중장의 이름을 따서 이시이 부대라고도 한다. 이 부대에는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는 17개 반이 있었고 마루타라고 불리는 생체 실험 대상자들에게 30여가지의 잔혹한 실험을 했다. 특히 세균폭탄을 만들어 중국에 투하하기도 했다.

하얼빈=글·사진 이강렬 대기자 ry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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