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운 대기자의 세상보기] 여보,위장전입 안 했지? 기사의 사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하는 것을 보고 퇴근 후 아내에게 물었다.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지만 둘째아이 학교 문제를 아내와 논의했던 기억이 나서 혹시 하는 마음에서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목동에서 괜찮다는 학교에 보냈지만 운 좋게 아파트 입주시기가 맞아떨어져 위장전입을 겨우 면했다.

당신이 뭣 때문에 그런 데 신경 쓰느냐는 아내의 핀잔에 "혹시 알아? 나중에 고향에 가서 군 의원이라도 출마하면 걸림돌이 될지"라며 웃어넘겼다. 아닌 게 아니라 남매 중 아들은 현역으로 제대했으니 속된 말로 꿇릴 게 없다. 뭔가 한자리 도모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걸림돌이 아들 병역문제하고 위장전입 아니었던가.

생각할수록 참으로 난감한 사안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위장전입은 아이들 엄마가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남편이 모를 수도 있고, 알았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어쩌랴.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 것을.

노환균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2일 취임식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노 지검장은 "완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위법은 위법"이라면서 "하지만 그것이 법 질서라는 측면의 본질과 얼마나 매치되는지는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저렇게 말할 수도 없는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견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몰아붙인들 더 이상 둘러대기도 힘들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매우 어렵다. 중세 로마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나자 전시국채를 발행했다. 그리고 자칫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그 국채를 귀족과 유산계층, 원로원 의원,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구입토록 했다. 또 귀족은 평민보다 먼저 전쟁터로 나갔고, 그 때문에 당시 귀족의 사망률이 평민보다 훨씬 높았다고 한다. 반면 우리 역사는 어떤가. 혹독한 세금은 물론이고 궂은 일과 위험한 일은 주로 하층민 몫이었다. 그런 역사가 우리 국민을 진보 좌파적 성향이 강한 민족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현 정부 들어 법과 질서를 유난히 강조하지만 과연 위에서부터 솔선수범하고 있는지는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노동부의 '2009년 노동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 425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8%가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반업체가 많은 것으로 봐서 관행적이거나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도 많이 포함됐을 듯 싶다. 하지만 국민과 근로자들에게 법과 질서의 준수를 요구하려면 정부나 기업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철저하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명(命)이 서지 않을까.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로 돌아가 보자. 그 자리가 위법자를 처벌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국민은 더 답답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위장전입을 했지만 대선 기간 중 그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됐으니 국민적 사면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여러 상황으로 볼 때 김 후보도 다음주 청문회에서 사면(통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자도 그렇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변재운 대기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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