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오호 통재라! 그린벨트 기사의 사진

“기억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왜 그토록 그린벨트에 집착했던 이유를”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5분쯤 동쪽으로 가면 새로 들어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서울 강일동에 들어선 강일 보금자리 주택단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흉물스런 판잣집이 즐비해 동부 서울의 대표적 슬럼이었던 곳이 정부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정비 계획에 따라 서울의 장기무주택자를 위한 주택단지로 탈바꿈한 것이다.



90만㎡ 규모의 제1지구엔 6500가구가 이미 입주했고, 60만㎡ 규모의 제2지구엔 40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국민주택 규모뿐 아니라 일부 40평 안팎의 중형 아파트도 공급돼 인기가 좋다.

학창시절 근처에 자주 가, 일대 풍경에 익숙한 나로선 아쉬운 점이 한둘 아니다. 경관을 거스르는 판자촌이 사라진 것은 다행이지만, 배병우의 사진 속에 나올 법한 멋진 소나무 숲까지 덩달아 사라진 것이다. 그건 허파 기능이 그만큼 사라졌다는 얘기다.

지난 5월 국토해양부는 인근에 대규모 보금자리 주택단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추가로 발표했다. 강일동과 맞닿은 하남시 망월·풍산동 일대 미사지구가 바로 그곳. 546만㎡에 4만가구가 들어선다니 사실상 평촌신도시(510만㎡) 규모의 신도시인 셈이다. 그곳 역시 쾌적하고 한강 조망이 가능해 신도시 중 최고의 입지로 꼽힌다.

국토부는 이곳을 한강과 연계한 국제 관광·위락·레저복합단지로 조성할 방침이란다.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환경훼손 논란과 수도권 시민 상수원 훼손에 대한 우려는 저만치 비껴나 있다.

강일택지개발지구 개발이 완료되고, 미사지구까지 들어서면, 하남시는 사실상 서울로 편입된다. 우려했던 도시연담화(連擔化:conurbation)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엉뚱한 곳에 신도시를 짓는 것보다 비닐하우스, 축사, 창고 등이 지어진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를 필요할 때 추가로 푸는 게 낫다"면서 "앞으로 필요할 때마다 그렇게 할 정책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국토부는 "하반기에 수도권 그린벨트 몇 곳을 추가 해제해 보금자리주택을 추가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긴 이 정부 들어서 발표된 '그린벨트 훼손 시책'이 한둘이 아니니 그리 놀랄 것도 없다. 대충 추려 봐도 작년 9월9일 이명박 대통령이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주택을 공급하고 싶다"고 말한 이후, "그린벨트는 성역일 수 없다"(9월17일, 이만의 환경부 장관), '그린벨트 해제 구체 방안 발표'(9월19일, 국토부), "집 없는 사람에게는 그린벨트가 '분노의 숲'이다"(9월24일,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에는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2월26일, 이 대통령), "서울 도심서 25㎞내 '비닐벨트'에 일반분양 아파트 24만채 짓겠다"(3월31일 정종환 국토부 장관) 등 숨이 찰 정도다.

기실 그린벨트 난도질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도입돼 연이은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에서도 성역처럼 보존돼온 그린벨트는, 역설적으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무차별 훼손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녹색성장을 부르짖는 실용정부에 들어서면 완전 무방비상태로 본격적인 훼파 과정을 걷게 된다.

그린벨트의 원산지인 영국보다 더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상찬을 들었던 우리의 그린벨트 시책. 하지만 이젠 '그린벨트→비닐벨트→개발벨트→사망벨트'로 이어지는 불길한 퇴행 가설이 무게를 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켠에선 여전히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혁명구호처럼 나부끼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흐트러지는 그린벨트 따라 삽질이 시작되면, 갈 곳 잃은 뭉칫돈이 종횡무진할 터이고, 그때마다 우리의 숨결은 더욱 거칠어질 터이고.

기억하자. 개발지상주의자로 매도당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왜 그토록 그린벨트에 집착했던가를. 또 기억하자. 갖은 이유를 대면서 그린벨트를 훼손한 이들을.

윤재석 논설위원 jesus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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