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김상욱] 과학의 언어 기사의 사진

얼마 전 무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뉴스가 하나 있었다.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현할 공식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널리 입증된 바다. 소수 엘리트 과학자들이 정교하게 디자인하여 만든 것이다 보니 사용하기 편리하고 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한 집, 비슷한 음식, 똑같은 옷을 걸치고 사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언어와 문자는 국가와 민족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차이로 남아 있다. 국제화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언어는 국제화에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영어교육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우리같이 작은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시로 대학 평가가 이루어지고 대학의 순위가 적나라하게 매겨지는 시대에 국제화지수라는 항목이 대학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영어로 강의하면 교수업적평가에서 가산점을 받고, 인센티브로 돈도 받는다. 일부 대학은 신임교수들에게 반드시 영어강의를 하도록 강제하기도 한다. 교수들끼리 하는 농담 하나, "이런 노력을 통해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교수들 영어실력은 좋아질 것이다."

전자기학을 영어로 강의하면 전자기학과 영어를 동시에 공부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생각되는 모양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영어공부 시키려고 전자기학을 희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어가 그렇게 중요하면 따로 시키면 되지, 왜 전공의 주요과목을 통해 가르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성공한 과학자가 되기 위한 중요한 바탕이 된다. 하지만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우선 과학을 잘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거지도 영어를 잘한다.

과학자의 공식 언어를 영어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과학자의 공식 언어는 이른바 브로큰 잉글리시, 곧 엉터리 영어다. 필자가 독일의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영국, 일본, 카메룬, 러시아, 독일 등 여러 나라 동료들이 참석한 파티가 열렸다.

한참 흥이 오르는데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사람들 영어는 다 알아듣겠는데, 영국에서 온 녀석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 좀 제대로 발음해 봐라." 물론 영국에서 온 친구를 놀리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영어는 그 언어의 고향인 미국, 영국을 뛰어넘는 언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스개다. 공식 언어는 말 그대로 공식 언어다. 서로 의사전달이 되면 충분하다. 하지만 과학은 다르다. 그것에 의해 과학자 자신의 가치가 결정된다.

사실 과학의 진짜 언어는 엉터리 영어도 아니다. 과학은 우주를 이해하려는 학문인데, 우주의 언어는 물리학이고 이는 수학으로 쓰여진다. 우주를 기술할 방법을 찌아찌아족이 했듯이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 수학이라는 문법은 때로 우주가 가질 수 있는 모습을 제한하거나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강제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들이는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대학 도서관에는 전공 책을 보는 학생보다 영어 공부하는 학생이 훨씬 더 많다. 인간들의 언어에 불과한 영어를 배우는 데 들이는 시간의 10%만이라도 우주의 언어인 물리와 수학을 익히는 데 써 보면 어떨까?

김상욱 부산대 교수 물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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