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고문 후유증으로 몸 불편한 큰아들에 연민 기사의 사진

어린시절·남다른 가족애

정치에 관심이 많던 코흘리개 소년은 수십년이 흐른 뒤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가족들까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역정 때문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족사랑은 각별했다.

◇어린시절=마을 이장이었던 아버지에게 일본의 매일신보가 무료로 배달됐는데 DJ는 여덟살 때부터 꼭 1면과 정치면을 주의 깊게 읽었다. 하의도보통학교 4학년 때인 1936년 목포 제일보통학교로 전학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가 하의도의 집과 농토를 다 팔면서까지 아들을 목포로 유학시킨 것이다. 섬소년 김대중은 전학하자마자 1∼2등을 다투다 72명의 동급생 가운데 1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39년에는 5년제인 명문 목포상업학교에 수석으로 합격, 모친의 기대에 부응했다. 학생의 절반가량이 일본인인데도 입학해서 3학년 때까지 줄곧 반장을 할 정도로 뛰어난 통솔력을 보였다. 한달에 한번 일본인 현역 교관이 주재하는 시국강연 때는 그가 질문을 하면 교관이 답변을 못해 쩔쩔매곤 했다고 한다. 일본인 선생은 '웅변이 대단하다' '명연설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등의 칭찬을 했다.

◇결혼과 가족=DJ는 두 번 결혼했다. 만21세 때인 45년 4월 목포 유지 집안의 차용애씨와 결혼했으나 차씨는 60년 3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 후 박순천 여사(후에 민주당 총재 역임)의 소개로 62년 5월 이희호 여사와 재혼했다. 이 여사는 이화여대와 서울사대를 졸업했다. 미국 스카릿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 이화여대 강사와 YWCA연합회 총무로 활약하던 신여성이었다.

차씨와의 사이에서 홍일 홍업씨를, 이 여사와의 사이에서는 막내 홍걸씨를 낳았다. 세 며느리는 모두 영남 출신이다. 큰며느리는 부산 출신으로 백범 김구 선생 경호대장을 지낸 독립유공자 윤경빈씨의 맏딸 윤혜라씨다. 둘째며느리는 TK 출신으로 5공 정부에서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신현수씨의 장녀 신선련씨, 셋째며느리는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임정상씨의 딸 임미경씨다. DJ는 3남1녀 중 장남이다.

◇남다른 가족사랑=DJ는 큰아들 홍일씨에 가슴 가득한 연민이 있었다. 홍일씨는 아버지의 정치를 돕다 고문받은 후유증으로 걷고 말하는 데 불편을 느낀다. 아들의 신체적 결함은 아버지에게 '한(恨)'으로 맺혀 있었다. 가족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도 애틋했다. DJ는 대통령 재임 시절을 제외하고 일요일 미사 직후에는 항상 아들·며느리·손자들을 모두 불러 점심을 함께했다. 옥중에서 큰며느리 윤씨에게 쓴 편지가 상당하고, 며느리들의 생일에는 손수 브로치를 고를 정도로 세심한 사랑을 보여줬다.

DJ는 페미니스트였다. 그가 공천권을 행사한 13대 총선 이후 항상 여성을 중용했다. 고위 공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줄 때도 반드시 부인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같은 DJ의 '여성 우대'는 부인 이희호 여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 시절부터 대문에 '김대중 이희호'라는 문패를 나란히 걸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옥중서신에서는 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내에게'라는 호칭을 썼다. 생전에 7명의 손주 가운데 첫 손주인 지영씨를 맏상주로 삼아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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