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북한과 협상하기 기사의 사진

바야흐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모양새다. 강경 일변도로 치닫던 북한이 짐짓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면서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엊그제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공사와 만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고 전했다. 그에 앞서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5개항에 합의했다. 대부분 당국간 협의를 거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아울러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고위 조문단 파견도 통보했다.

이에 비추어 미·북, 남북대화가 조만간 재개되리라는 것은 거의 틀림없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북한과 협상할 것인가, 즉 북한의 협상술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다.

북한의 뛰어난 협상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지칭해 "내가 상대해 본 가장 훌륭하고 강력한 협상가들 가운데 하나"라고 평했다. 북한 정권은 형편없지만 협상가들은 최고라는 것이었다.

북한에 이미 많은 것을 안겨준, 널리 알려진 벼랑끝 전술과 살라미 전술은 차치하자. 평지풍파식으로 문제를 발생시킨 뒤 없었던 일로 만들면서 이를 양보로 포장해 상대의 새로운 양보를 끌어내는 '홀리기 전술'은 어떤가.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나 미국의 여기자들 케이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시간에 쫓겨 성급하게 양보하고 뒤통수 맞는 舊態는 이제 탈피해야 한다”

유씨나 미국 여기자들 문제는 당초 별일도 아닌 것을 북한이 그들을 인질로 억류한 데서 발생했다. 그래놓고 상대국의 애를 태우다가 석방함으로써 마치 커다란 시혜나 베푼 듯 행세하면서 유무형으로 양보를 요구한다. 아닌게 아니라 리처드슨은 북한이 미국인 석방에 상응하는 조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 국민 중에는 유씨 석방을 북한의 양보로 받아들여 대북정책을 전면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대단한 협상술이다.

물론 북한의 협상력을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알고 보면 북한은 고전적인 소비에트식 협상술을 그대로 써먹고 있다는 것. 협상전문가인 허브 코헨 미 미시간주립대 교수의 저서 '협상의 법칙'에 따르면 소비에트식 협상술은 이렇다.

① 항상 상대의 예상을 뒤엎는 어처구니없는 심한 요구로 협상을 시작한다. ② 협상장에 나온 인물들은 권한이 제한돼 있거나 아예 없다. ③ 감정을 강하게 드러낸다.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다. ④ 상대방의 양보는 약함의 표시로 받아들인다. ⑤ 스스로는 어떤 종류든 양보를 미룬다. 양보할 때는 이미 입장이 변했을 때다. ⑥ 최종기한을 무시한다. 시간은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듯 행동한다.

과연 이제까지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이 보여온 행태가 망라돼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물론 옛 소련과 협상을 많이 해 본 미국조차 북한과의 협상에서 결과적으로 늘 밀려 왔다. 아마 다른 원인들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의 협상술이 옛 소련식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제부터라도 한국과 미국은 그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터무니없는 요구가 있을 경우 흥분하는 등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아예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조기 양보 역시 금물이다. 양보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북한도 상응하는 양보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지만 북한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 코헨 교수의 지적처럼 북한은 오히려 이를 상대방의 약점이나 굴복으로 받아들여 고마워하지 않을 뿐더러 차후 협상에서 북한의 기대치만 높여줄 뿐이다.

아울러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종래 북한은 협상에 응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여유를 한껏 이용해온 반면 한국이나 미국은 국내 정치적 요인 등으로 인해 시간에 쫓기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북한 편만이 아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이와 함께 북한과의 협상은 신뢰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미첼 리스 전 미 국무부 정책실장의 충고대로 불신을 전제로 해야 옳다. 항상 끊임없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도 미국도 걸핏하면 뒤통수나 얻어맞는 대북협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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