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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백화종 칼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기사의 사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동초의 한 생애, 수고 많으셨습니다. 격랑의 시대 맨 앞에서 온 몸으로 떠안았던 무거운 짐 이제 다 하나님께 맡기고 편히 쉬십시오. 가시는 그곳엔 당신께서 인고해야 할 혹한도, 생전에 그토록 가슴앓이를 했던 우리 시대의 부조리들도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동포가 남북으로 찢기고 동서로 나뉘고 좌우로 갈라지는 비극도 없을 테고, 권력과 부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대립과 갈등도 없을 테니까요.

당신께서는 떠나시는 순간까지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마치 당신이 혼자 풀어야 할 숙제인데 못다 푼 채 개학을 맞은 초등학생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선 할 일을 할 만큼, 아니 넘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큰 경제적 유산을 받았다면 당신에게선 많은 정치적 유산을 받았습니다.

독재정권의 납치살해 기도와 사형선고에도 굴하지 않은 당신과 동지들의 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뤄냄으로써 민주주의를 외치다 광주 등지에서 스러져간 유·무명의 넋들을 달래줬습니다. 살아 있는 우리들은 당신의 행동하는 양심 덕에 그 무섭던 남산의 중앙정보부 지하실, 서빙고의 보안사 분실, 남영동의 대공 분실을 까맣게 잊고 대통령까지도 비판할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정권 안보를 위해서는 무고한 사람도 간첩으로 만들어 사형시키는 인권 야만국의 굴레와 불명예를 벗었습니다.

당신의 대북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실험 등으로 보수와 진보 간에 치열한 논쟁이 현재진행형이고 어쩌면 끝내 결론이 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그 햇볕정책으로 개성에서 남북한이 함께 생산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남한 사람들이 금단의 명승지였던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해외에서 북한 사람과 스치는 것도 조심스러웠던 우리가 북한에 가서 그곳 사람들을 부담 없이 만나고 있으며, (안보불감증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한반도의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만큼 긴장이 완화됐습니다.

당신의 대통령 당선은 첫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로 정치 선진화의 한 획을 그은 것이었으며, 지역적으로 계층적으로 소외됐던 민초들의 한을 풀어주는 의미도 지녔었습니다. 당신의 노벨평화상 수상, 그리고 국민과 함께 한 외환위기의 최단 기간 극복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저력을 과시한 금자탑의 하나였습니다.

살아생전 이처럼 많은 유산을 남기신 당신께서는 마지막 가시면서 당신과 국민이 함께 목말라했던 화합의 장을 마련하셨습니다. 평생 민주화의 동지이자 권력의 경쟁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신께 사형을 선고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한 차례 대권 경쟁자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당신을 죽을 고비로 몰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 그리고 당신께서 그의 국내 정치와 대북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던 이명박 대통령까지 병실과 빈소를 찾아 화해를 청했습니다. 평양에서도 조문사절단이 옴으로써 경색된 남북 관계가 풀릴지 모른다는 희망을 낳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신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이 남긴 큰 발자취 중에는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을 것이고, 시(是)가 있으면 비(非)도 있을 것입니다. 대북 정책 논란, 이념 갈등, 지역주의 시비 등이 그것들입니다. 그러나 당신을 떠나보내는 지금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마지막 가시면서 국민에게 남기고 싶었던 게 화합이었고 당신을 미워했던 이들도 지금은 당신의 뜻을 따라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자려고 애쓰면 잠이 더욱 멀리 달아나는 불면증처럼 당신께서 극복하려고 몸부림치면 그럴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당신을 옥좼던 이념 갈등, 지역주의 등 부조리도 당신이 내려놓으면 차차 희석될 겁니다. 당신께서 염원하셨던 대로 모든 게 다 잘될 겁니다. 당신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내가 국민일보의 발행부수를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줄까요? 백 부장이 좋은 칼럼을 더 많이 쓰세요." 당신께서 1994년 영국에서 귀국한 직후 마포의 한 음식점에서 복국 한 그릇씩을 시켜놓고 두 시간 넘게 시국 얘기를 나눈 뒤 회전문을 빠져나와 헤어지면서 저에게 해주신 덕담입니다. 덕담도 보람 없이 다듬어지지 않은 한 편의 글로 당신을 보내드립니다.

백화종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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