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달 전 메일이 왔다. 보낸 곳은 장애인 권익단체다.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협조를 부탁한다며, 본보에 실린 '장님' 용어를 앞으로는 '시각장애인'으로 바꾸어 사용해 달라는 내용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차별적 언어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큰 틀의 요지는 장님, 벙어리 등 해당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부담을 줄 만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이런 용어를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미처 걸러내지 못하는 수도 있다.

때론 이런 취지에 반하는 주장도 나온다. 대중 언어가 일부의 주관이 개입된 논리로 인해 용도폐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단어를 피하자면 그와 관련된 속담이나 성어들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속담이나 성어는 비유적 표현으로서 말에 감칠맛을 더해 주는데, 이들을 잃게 되면 우리말이 딱딱해진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애매한 것은 대체 언어의 불안정성이다. 이는 위 단체에서 보내온 메일의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가까운 것에 매여 장님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메일에서는 본보에 실린 이 글 가운데 '장님' 표현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것을 그 단체에서 제시한 '시각장애인'으로 바꾸면 글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때의 장님은 '현실만 보고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물론 이런 반론들을 근거로 해당 언어의 분별없는 사용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옆에 두고 '눈뜬 장님'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어려운 만큼, 당사자와 관련된 곳에서는 관련 용어를 피하는 게 옳다. 언론도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하므로 늘 장애인 곁에 있는 셈이다.

47년간 부부의 연을 맺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두 분의 마지막을 결속한 것은 아내가 손수 뜬 벙어리장갑이었다. 과거 옥살이할 때에도 늘 벙어리장갑이 건네졌다는데, 거기엔 추위를 덜라는 뜻 외에 입막음의 의미까지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속뜻까지 얹힌 벙어리장갑이니 대체할 말이 마땅치 않다. 언론들도 할 수 없이 이 말을 사용했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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