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재호] 넛지의 정치 기사의 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國葬)을 지켜보면서 마치 한반도에 신(新)데탕트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서거를 계기로 꽉 막혔던 남과 북이 다시 만나고 여야·지역·이념·계층·노사 대립·갈등·반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화해 무드에서 특별히 주목을 끈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전두환 전 대통령도, 북한 조문사절단도 아니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측의 국장 요구를 흔쾌히 수용했다. 국장이 김 전 대통령 업적에 걸맞은 것일지라도 전례가 없는 일이고,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의 형평성을 의식한 청와대와 정부 일각의 난색에 수긍이 가지 않는 바 아니었으나, 이 대통령은 "그렇게 예우하는 게 당연하고 남은 사람의 도리"라고 자신을 낮추기까지 했다.

이 대통령의 결단은 DJ와 YS 진영의 화해보다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이라는 의미로 평가할 만하다. 보수 진영에서 다소 비판이 나올지 몰라도 대국적·민족적 통합 차원에서 보면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통령 유족과 측근들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호남인, 나아가 진보 진영과 전 국민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이다. 이제 선물을 받은 쪽에서 답례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 되었다.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면 이 대통령은 국장과 국민장을 놓고 '넛지(Nudge)의 정치'를 펼쳤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선물했다는 넛지(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저)는 '팔꿈치로 슬쩍 찔러 주의를 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이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저자들은 넛지를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로 정의한다. 그런 면에서 넛지는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MB노믹스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음달로 글로벌 금융위기 1년이 된다. 우리 경제가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지만 재정은 악화일로이고,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상반기 투자는 전년 동기보다 9.1%나 감소했지만 유보율은 44.29% 늘어난 962.98%에 이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은 7월 초 정부가 투자촉진 금융·세제 지원 방안을 내놨어도 묵묵부답, 오히려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을 뿐이다.

감세 혜택을 톡톡히 봤음직한 부자들도 요지부동이다. 상위소득 10%는 작년 이후 소득 증가분의 10%정도밖에 쓰지 않고 있다. 근 90%에 달했던 지난 1988∼2007년에 비하면 엄청난 '변신'이다.

경제회복 국면에서 투자가 저조하면 고용창출→소비 증가→투자 확대의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지 못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 비중(54%)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60.8%)에 도달할 경우 2%의 성장 요인이 있다고 한다(현대경제연구원 분석).

투자와 소비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기업과 부자는 MB노믹스의 든든한 기반이다. 이 대통령은 '부자감세, 서민증세'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이들을 짝사랑해왔다.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되돌리지 않는 한 가진 자의 경제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화합의 국장 정국은 끝났다. 이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에게 했던 것처럼 지지계층을 상대로 넛지의 정치를 펼칠 때가 됐다. 넛지를 꼼꼼히 읽고 연구해보면 그 해법을 못 찾을 바도 아니다 ?hjung@kmib.co.kr
정재호 경제부장 jhj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