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성영 (13) 고향마을 축사 개조 호명교회 창립

[역경의 열매] 김성영 (13) 고향마을 축사 개조 호명교회 창립 기사의 사진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서원한 게 있었다. "고향 마을에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내 고향 전남 여천군 삼일면 호명리는 가난한 농촌 마을로 다섯 개의 자연 부락이 오각형 꼭짓점 형태로 이뤄져 있다. 전통적으로 유교가 강하고 마을 진입로의 300년 이상 된 고목나무 100여 그루를 정성껏 모실 정도로 무속신앙도 깊은 편이다.

1976년 8월 나는 여수제일교회 청년들과 함께 마을회관, 고목나무 그늘 아래서 여름성경학교 하계 봉사 활동을 실시했다. 이것을 계기로 매 주일 오후 고향 마을에서 교회학교를 열었다. 교통이 불편해 8㎞는 버스로, 4㎞는 걸어다니며 5∼6명의 청년들이 헌신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린 지 4년, 여수제일교회 청년회 후원으로 신학교에 재학 중인 황길순 전도사를 초대 교역자로 모셔왔다. 그리고 이듬해 축사를 임차·개조해 '호명교회'를 창립했다.

교회 건축을 계획한 건 이때부터다. 그럼 교회는 어디에 세울까. 이왕이면 호명리 다섯 개 마을의 중심에 세우고 싶었다. 우뚝 솟은 동산에 교회가 세워지면 그야말로 진리의 등대처럼 마을을 밝혀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은 마을의 성역인 효열각(孝烈閣) 사당과 인접했다. 그래도 부지를 해결하기 위해 땅 주인을 찾아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땅 주인은 20년 전 개인지도를 부탁 받고 하숙집에서 내가 2년 동안 공부를 가르쳤던 제자였다. 그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흔쾌히 "형님께서 부탁하시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필요하신 대로 사용하십시오"라며 땅을 제공해주었다.

또 모교 후배가 담임 목사로 있던 고흥의 상포교회에서 첫 간증 헌신 예배를 인도하고 받은 사례비 10만원을 설계비 계약금으로 내놓았다. 교회 건축을 위한 준비 작업은 끝났다. 이제 터파기를 할 차례. 그런데 이번엔 마을 사람들이 조롱했다. "이보게, 땅은 구입했을지 몰라도 교회 건물은 못 세울 걸세. 그 땅은 온통 바위산이라 흙 한 삽도 퍼내지 못할 걸." 하지만 막상 중장비 작업을 시작하니 교회 건축 부지에는 바위가 하나도 없었다.

호명교회는 이처럼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난관에 부닥치고, 또 해결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건축비가 없어 쩔쩔맬 때는 예상치 못했던 이들의 헌신이 잇따르며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다. 교회 지붕 콘크리트 공사를 하던 날,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와 1시간 이상 폭우가 쏟아졌다. 작업해둔 시멘트가 흘러내려 마무리 공사에 애를 태웠다. 그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하신 것처럼, 언약의 메시지를 보여주셨다. 비가 그치면서 마을과 교회 사이에 쌍무지개가 떠올랐던 것이다. 인부와 주민들은 비로소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신다"며 환호했다.

고향 마을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하며 교회 건축을 꿈꾼 지 10년. 나는 991m²(약 300평) 대지에 175m²(약 53평)의 아담한 교회를 세워 봉헌했다. 현재 호명교회는 100여명의 성도가 모이면서 자립 교회로 성장했다. 3년 전 정년퇴임한 곽중국 목사님에 이어 김옥수 목사님이 시무하고 있다. 지금까지 호명교회는 목사 1명, 전도사 2명을 배출했다. 성도들과 나의 비전은 앞으로 교회 창립 100주년이 될 때까지 300명 이상의 목회자를 배출하는 것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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