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고인을 정말 존경한다면 기사의 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졌다. 서울의 국가원수 묘역에는 더 자리가 없어 최규하 전 대통령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졌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현충원에 어찌어찌 터를 낼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유족이 원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들린다.

정치사적 인물이다. 관례 혹은 전례도 제도의 범주에 드는 것이긴 하지만, 장례문제에 있어 유족의 뜻을 외면해가면서까지 원칙 따지고 관례 따질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국민적 추모 속에 치러진 장례였던 만큼 뒷말 남길 사단(事端)은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한 대응일지도 모른다. '예외 없는 법은 없다.' 이 대통령은 이 경구에 기대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했을까?

"야4당과 단합해 승리하라"

문득 사제갈주생중달(死諸葛走生仲達)의 고사가 떠오른다. 그런 경우가 결코 아니라면 흑묘백묘론은 어떨까? 실용주의 대통령이기도 하니까. '검은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 잘 잡는 게 좋은 고양이'라던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을 본받아 '어떤 결정이든 유족으로부터 좋은 말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은 결정'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런 계산이라도 했다면 오히려 봐줄 만하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그랬다고 할 땐 이야말로 죽은 제갈공명에 쫓기는 사마중달의 신세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후계자 경쟁의 조짐이 있다는 보도다. 기사를 쓴 기자만의 시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연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민주당은 정 대표 중심으로 단결하고, 야 4당 등과 단합해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문제 위기를 위해 승리하라."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 24일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라며 밝힌 내용이다. 22일 일반병실로 옮긴 후 자신에게 남긴 최후의 말이라고 했다. 입증하긴 어렵겠지만 예사롭지 않은 파장은 불러올 수 있을 것 같다. 정세균 당 대표는 이 '유언'을 후광 삼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같은 날 "행동하는 양심이 돼라,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평화협력의 3대 위기를 민주당이 앞장서 극복해라, 모든 민주개혁진영이 통합하라는 것이 유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에선 벌써 혈통경쟁이

이날 아침 일찍 묘소를 참배한 무소속 정동영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가치의 국부(國父)로 모셔야 한다"면서 "저는 97년 김대중 후보, 2002년 노무현 후보에 이어 2007년 민주진영 대선 후보로 나섰다. 내 몸에는 민주당의 피가 짙게 흐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진시황제 사후에 유서를 조작하여 후계자 지위를 맏이 부소에서 막내 호해에게 넘긴 환관 조고(趙高), 그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공모한 승상 이사(李斯)의 전례를 답습할 사람이야 있겠는가. 다만 야당 정치인들이 김 전 대통령의 후광에 너무 집착할 경우 서로 다른 내용의 유언 및 유지가 이곳저곳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온 국민의 기억 속에서 한사코 끄집어내어 자신들의 이해타산 안에 가두어버리고 마는, 욕심이 많아 더 어리석은 추종자들은 제발 없기를….

"아! 산곡(山谷)은 변천되고 세대는 바뀌게 마련이다.…옛날 만기(萬機)를 총괄한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어 초목(樵牧:초동과 목동)은 그 위에 노래하고 호토(狐兎:여우와 토끼)는 그 곁에 구멍을 뚫는다. 자재(資財)를 허비하여 역사의 조롱거리가 되고 헛되이 인력만 수고롭게 할 뿐 죽은 넋을 살릴 수 없는 것이니, 고요히 생각하면 그지없이 슬픈 일이다. 이는 내가 즐겨하는 바 아니니 죽은 뒤 10일이 되거든 고문(庫門)의 바깥 뜰에서 서국(西國)의 식에 의하여 화장하고…."

삼국사기에 실린 신라 문무왕의 유조(遺詔)다. 신하들은 그 뜻을 받들어 시신을 화장해서 동해에 장사지냈다. 그 1300여년 후의 인물 덩샤오핑도 생전의 유언에 따라 동중국해에 화장된 유해가 뿌려졌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hrefmailto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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