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운 대기자의 세상보기] 무야 어떻게 썰든 기사의 사진

대기업 고위 임원으로 있는 모씨의 이야기. 하루는 퇴근 후 아내의 요청으로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시험공부를 도와주다가 그만 화가 치밀었단다. 아들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공부 내용 때문이었다. 과목이 기술가정인데 무 등 야채 써는 방법을 외우고 있더라는 것. 이런 것까지 외워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했단다(참고로 야채 써는 방법에는 채썰기 통썰기 깍뚝썰기 어슷썰기 얄팍썰기 돌려깎기 다지기 등 10여가지가 있다).

기자의 중고교 시절을 생각해봐도 마찬가지다. 동해안에서 많이 나는 어류가 무엇인지, 구리 아연 등 특정 광물이 어디서 많이 나는지 얼마나 달달 외워댔던가. 그렇다고 그것이 헛공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정작 사회생활에 소용이 되는 공부가 얼마나 되던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발표한 미래형 교육과정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미래형 교과과정은 쉽게 말해 국영수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기타 과목은 합쳐서 짧은 시간에 끝내자는 것이다. 여기에다 교장에게 총 수업시간의 20%에 해당하는 편성자율권을 부여해 국영수 시간이 더 늘어날 수 있게 했다. 교장은 학부모 요구에 따라 시간수를 조절할 가능성이 큰데 학부모들이 기술가정이나 윤리 시간을 늘려달라고 할 리는 만무해 보인다. 어찌 보면 미래형 교육과정은 교육에 '실용'을 접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기자도 야채 썰기나 철광석 생산지 같은 것을 가르치는 시간은 좀 줄여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사회와 윤리다. 이 과목을 합쳐서 시간수를 줄이는 데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교과부는 사회, 윤리를 기술가정과 같은 반열로 생각하는 것인가? 교과부는 우리 자녀에 대한 공동체 교육의 중요성을 야채 썰기와 같은 수준으로 보는가? 우리는 수시로 벌어지는 국회의 난투극을 보면서 정치권을 욕한다. 하지만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면 영락없이 똑같은 행태를 보인다고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집단이기주의와 님비 현상이 난무하고 비난과 갈등이 일상화돼 버렸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애당초 마음에 없다. 어찌 보면 너 죽고 나 살기다. 이쯤되면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교육에 문제가 없는지.

흔히들 교육에 미래가 달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영수를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성동 전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지난 21일자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그래도 교육이다'라는 기고문에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첫 번째 가치로 "남을 배려하고 협동하며,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을 꼽았다.

프랑스의 대입수능 격인 바칼로레아는 철학이 필수과목이고, 그 해 철학문제는 언론과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가 된다. 바칼로레아는 인간정신과 도덕·정치·사회·경제 등 다방면에 걸쳐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요구하는 시험으로 기출제 문제에는 '사랑은 의무일 수 있는가' '진리는 인간을 구속하는가 자유롭게 하는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등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국영수다.

기자는 얼마전 케이블TV에서 우연히 일본 NHK의 '어린이뉴스'를 보았다. 뉴스 진행자는 현재 한 이슬람국가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군복 입은 인형과 그림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었다. 섬뜩함을 느꼈다. 우리가 어린이들을 동화책 속에 가둬놓고 있을 때 일본 어린이들은 글로벌 커뮤니티를 배우고 있는 것인가?그렇게 자란 우리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의 경쟁력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과연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변재운 대기자 hrefmailto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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