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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포스트 DJ와 민주당

[백화종 칼럼] 포스트 DJ와 민주당 기사의 사진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DJ)은 겨우 3위를 했다. '내 고향 대통령'이라는 비원으로 득표율 86.1%의 기록적 지지를 보냈던 호남인들은 밖에서 맞고 들어온 자식에게 속이 상해 욕을 퍼부어대듯 DJ를 비난했다.

위기를 느낀 DJ는 이듬해 4월의 13대 총선에서 자신의 평민당이 호남에서조차 반타작을 못할 것이라며 지지를 읍소했다. 총선 결과는 예상과 달리 평민당이 호남의 37개 선거구를 사실상 모두 휩쓸었다

호남에서의 이런 'DJ 정당'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은 이후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까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물론 영남에서도 이에 대칭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 시대의 마감을 통찰해야

여기서 만들어진 게 "호남에서는 DJ 공천만 받으면 말뚝도 당선된다"는 말이었다. 그 비아냥거림처럼 "DJ 공천장"이 말뚝에게도 주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쪽 공천을 받은 사람들은 힘 들이지 않고 당선됐던 건 사실이다.

그 막강했던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물론 호남 사람들의 'DJ 정당'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이 일거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DJ의 영향력이 시나브로 약화될 것임은 정한 이치다. 민주당은 이러한 정치 지형의 변화를 통찰해야 한다. DJ의 서거로 한 시대가 마감됐음을 직시하고 홀로 설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홀로 설 각오를 하면서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점은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즉 시대정신이 무엇인가이다. 따지고 보면 DJ도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이에 몸을 던졌기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 이 땅의 민주화, 독재 정권에 빼앗긴 국민주권을 되찾는 것이 당시로서는 시대적 요구였던 것이다.

이러한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완전하다고까지 말할 순 없겠으나 상당 부분 충족됐다. 물론 권력이란 속성상 독재 지향적이어서 감시와 경계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 그것은 야당의 소임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민주화라는 명제를 제1의 시대적 요구로 절박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이 'DJ 유훈' 등을 내세우며 그것에만 올인한다면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속시킬 순 있겠지만 지지 세력을 늘려나가긴 힘들 것이다. 당연히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당으로 도약하는 건 요원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라

민주화가 상당 부분 충족된 이후의 시대적 요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차원 높은 국리민복의 실현, 즉 국가 선진화가 아닐까 싶다. 투박하게 말해 국민이 등 따습고 배부르며 마음 편하게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협을 불식하고 지역주의나 이념갈등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루는 것도 그 중 일부다. 당리당략에 따른 정쟁을 지양하고 민생을 챙기는 것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글로벌 시대에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갖도록 뒷받침하는 것도 정치가 할 수 있는 선진화에 속할 것이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10년의 집권 경험을 갖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이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현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야당은 정부 여당의 잘못된 국정 운영을 비판 견제하는 것을 제1의 소임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국민이 선뜻 정권을 맡겨주려 하지 않는다. 정부 여당보다 더 좋은 정책을 내고 실현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이 지역 정당에서 전국 정당으로 발전하고, 여야가 소모적 극한대결 대신 생산적 정책 경쟁을 하고, 이념 과잉에 따라 반목하는 등의 구태를 벗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솔선수범해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의 야당이 과거 독재정권에 항쟁하던 두 김씨 시대의 야당보다 더 어려운 처지인지도 모른다. 당시엔 시대적 요구가 민주화라는 데 이견이 없었으나 지금은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가에서부터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화종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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