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성영 (16) 신학교 대신 평신도 사역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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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6월 제1회 여수성시화운동 전도집회를 성황리에 마친 뒤 나의 선교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지역신문과 방송을 통한 매스컴 선교를 계속 이어갔다. 광고비는 사업하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충당했다. 여수성시화운동본부 사무실 운영이 힘들어 철거 예정지로 임시 이전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해 선을 이뤄주시리라 확신했다.

그것만 믿고 제2회 전도집회를 준비했다. 83년 새해 어느 날, 여수제일교회 정성규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올해도 성시화 집회를 하실 겁니까?" "네, 물론이지요. 목사님." "그럼 제가 좋은 강사를 섭외했는데, 그분을 모시면 어떨까요?"

예장 합동보수 총회장이며 총회신학대학장인 황성수 목사님이었다. 황 목사님은 4·19 직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몰락한 후에도 자유당 간판으로 참의원에 출마해 전국 최다득표를 하고, 국회부의장을 지낼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여수시민들은 '황성수 목사'보다 그 옛날 유명했던 '정치인 황성수 박사'를 더 보고 싶어했고, 마치 선거유세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듯 제2회 전도집회 역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83년 5월 23∼26일 여수제일교회에서 열린 제2회 여수성시화운동 전도집회는 1회 때보다 더 많은 1만여명의 성도들이 참석했다.

집회 광고 때마다 나는 여수성시화운동의 정체성과 당위성, 비전에 대해 호소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집회를 두 번씩 치르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떠안게 됐다. 주변에서 나만 보면 "왜 신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황 목사님도 집회를 끝낸 뒤 "젊은 시절, 열심히 뛰었던 평신도 지도자들이 나중에는 신학교에 가서 결국 목회자가 됩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어요. 저의 경우도 그렇고요"라면서 신학교에 갈 것을 권했다. '목회자의 길을 가야 하는가'를 놓고 깊은 생각에 빠진 어느날, 여수의 한 목사님으로부터 헌신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이렇게 교회를 다니며 집회도 인도하게 될 텐데, 그렇다면 나도 목사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때 부산의 강세원 장로님이 들려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강 장로님은 나의 초청으로 부산에서 여수까지 오셔서 집회 3일 동안 전 과정을 참관하셨다. 그리고 한껏 격려해주셨다.

"신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교단이나 교회에 소속되어 버리면 현실적으로 성시화운동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성시화운동 사명자는 한 도시에서 겨우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귀한 부름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내가 걸어온 평신도 사명자의 길은 너무나 외롭고 힘겨웠기에 굳이 나를 따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강 장로님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나는 그분을 보며 평신도 사역의 길을 걷게 됐다. 내 삶의 멘토인 강 장로님은 이미 나의 고민을 꿰뚫고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러나 절대 강권하지는 않으셨다. 스스로 이 길을 가면서 어떤 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선의 방법이요 합당한 것인지를 그저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며 나에게 결정권을 넘기셨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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