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窓―김영중] 천연물新藥 타미플루 기사의 사진

6월 하순 미국 생약학회 50주년 기념 국제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을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휴가철을 맞아 만석으로 북적거렸을 기내에 빈자리가 많아 한적한 느낌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불황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학회 참가자조차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고 그 이유가 신종 플루 확산 때문인 것을 알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회를 끝내고 귀국하니 국내에선 신종 플루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불과 두 달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도 신종 플루가 확산일로에 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감염 환자가 4000명을 넘어섰고, 지난달 27일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초·중·고 개학과 함께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돼 모두들 불안에 떨고 있다. 매사 안이하게 대응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허둥대고 있는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신종 플루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사람·돼지·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에 의해 확산되는 질병으로 지난 4월 멕시코에서 처음 발생한 뒤 세계 각지로 빠르게 번지고 있는 전염병이다.

2003년 말부터 전 세계를 휩쓸었던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가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휘몰아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보다 전염성과 위험성이 훨씬 더 큰 신종 플루의 출현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달나라에 발자국을 남겼고,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가까워졌으며, 각종 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목숨을 좌우하는 질병은 정복하지 못하고 새로운 질환이 출현할 때마다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원래 조류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개발됐던 타미플루가 신종 플루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홀딩이 2016년까지 타미플루의 특허를 갖고 있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각국이 타미플루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미플루가 중국의 토착식물인 대회향 또는 팔각회향 (star anise)이라는 천연물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팔각회향은 목련과 상록수 열매로 3000여년 전부터 향신료로 널리 쓰여 왔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시킴산(shikimic acid)으로부터 합성한 물질이 타미플루다. 최근엔 팔각회향뿐 아니라 솔잎과 전나무, 가문비나무 잎 등에서도 시킴산을 분리할 수 있다고 한다.

천연물에서 유래된 화합물로부터 신약이 개발된 예로, 푸른곰팡이에서 개발된 항생제인 페니실린, 버드나무에서 개발돼 하루 1억정 이상이 소비되는 해열진통제 아스피린, 양귀비에서 추출한 진통제 모르핀, 정원에 많이 식재돼 있는 주목에서 개발된 항암제 탁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질병으로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자연 속에 숨겨 놓았다. 타미플루처럼 신종 질환을 치유할 수 있는 의약품 개발은 첨단과학으로 이루어지지만, 신약 개발의 핵심적 소재는 천연물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흔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혹 우리가 아침 출근길에 무심코 지나치는 풀이나 나무 속에 우리의 후손이 간절히 찾을 천연약물질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영중(서울대 교수·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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