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곽경근] 아날로그의 재발견 기사의 사진

"필름 하나 제대로 못 감아서 어디 사진기자 하겠나! 자네 일찌감치 다른 직업 찾아보지 그래?"

과거 신입 사진기자들이 입사하면 컴컴한 암실에서 선임기자는 이렇게 군기를 잡았다. 빨간 꼬마전구 아래서 팔자눈썹을 꿈틀대던 선배 얼굴은 공포감마저 자아냈다.

불과 10여년 전, 신문사 사진부에서 필름을 사용하던 아날로그 시대의 단상이다. 하지만 요즘은 '하룻밤 자고 나면'이 아니라 조금 과장해서 '화장실 잠깐 다녀오면' 최첨단 디지털 제품이 성찬(盛饌)을 이룬다. 디지털 신기술로 무장한 '디제라티(Digerati: 디지털 신지식인)' 젊은 기자들이 선배들을 주눅 들게 하는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디 회사에서뿐이랴. 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어쩌다 중학생 아들놈이 휴대전화에 내장된 카메라 사용법을 물어보면 쩔쩔매게 된다. 답답한 듯 휴대전화를 빼앗아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오히려 사용방법을 알려주며 "아빠, 사진부장 맞아?"하며 장난스럽게 혀를 찬다. 안팎으로 진땀이 흐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디지털은 참과 거짓(0과 1)의 이분법으로 냉정하게 세상을 나눈다. 디지털 신기술은 수많은 콘텐츠를 탄생시키며 다양한 제품들을 융합해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쉼 없이 쏟아내고, 초슬림, 초경량, 고성능, 고화질, 차세대, 일체형, 세계최초, IT융합, 멀티 등의 단어를 적절히 섞어 디지털 컨버전스 혁명을 이뤄내고 있다.

손놀림과 머리놀림이 둔해진 아날로그 세대들이 한 가지를 겨우 익히고 나면 더 배워야 할 열 가지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삶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오히려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프롬프트 없이는 노래 한 곡 못하고 낯선 길은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헤매곤 한다. 디지털 라이프 시대에는 수세기를 이어온 아날로그적인 삶이 끝난 것일까.

얼핏 그런 듯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속도와 성과를 중시하는 디지털 문화 속에는 본질과 감성을 중시하는 아날로그 문화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성(rationality=digital)이 감성(sensibility=analogue)을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던 디지털 휘몰이가 반드시 승리한 것 같지는 않다. 디지털화는 대량생산을 통해 수요자들의 경제적 접근장벽을 낮추고 문화의 대중화에 성공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가치판단의 획일화와 몰 개성화를 초래했다.

디지털화가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찾게 된다. 최근 정보기술(IT) 문화 또한 서서히 아날로그 쪽으로 그 중심축을 옮기고 있는 여러 현상을 볼 수 있다. 시장에 가장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결합한 '디지로그(Digilogue)' 제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광고 마케팅 분야에서도 첨단 제품일수록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는 접근 방법이 공감을 얻고 있다.

앞 다투어 컬러 경쟁을 벌이던 신문지면에도 감성적인 흑백공간들이 다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차가운 디지털과 따뜻한 아날로그의 만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인간이 지닌 가치관의 정점에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의 최종 목표는 결국 아날로그가 아닐까. 단지 방법론과 지향점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을 뿐, 가치의 궁극적인 무게중심에는 아날로그가 자리 잡고 있다. 디지털 라이프에서 균형 있는 삶이란 디지털 신대륙과 아날로그의 옛 땅을 편리하게 오가는 모습일 것이다.

이번 주말, 도시민들이 자연을 찾아 떠나는 팜스테이처럼 옛 물건들이 즐비한 풍물시장을 찾아 '아날로그스테이(Analoguestay)'를 즐겨봄은 어떨까.

곽경근 사진부장 kkkwa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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