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성영 (17) 생활속에서 향기 나는 평신도 사역

[역경의 열매] 김성영 (17) 생활속에서 향기 나는 평신도 사역 기사의 사진

'목회자의 길을 갈 것인가, 평신도의 길을 갈 것인가.'



이미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게다가 병고의 홀어머니까지…. 내가 신학교를 간다면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살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게다가 아내에게 더 무거운 짐만 안겨줄 게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의 제3육군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오히려 강세원 장로님을 통해 감동과 감화를 받았다.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진 듯했다. '생활 속에서 크리스천의 향기를 발하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자.'

이후 내가 걸어온 길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여수·여천기독교직장연합신우회의 탄생이다. 두 번의 성시화 전도집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뜻있는 분들이 모였다. 표어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였다. 성시화운동의 표어인 '여수시를 예수시로!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의 연장선이었다. 1984년 1월 여수직장신우회 창립예배에서 초대 회장에 남해화학 공장장인 김수안 집사를, 총무에 오윤근 집사를 선임했다. 신우회는 여수성시화운동의 공식적인 첫 열매였다.

"하나님께서 어떤 큰일을 계획하고 이루실 때는 먼저 사명자를 세우시고, 그 다음 사명자를 돕는 동역자를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후원자들을 붙여주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함께하시는 일이라면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어느 유명 목사님이 나에게 들려준 조언이었다.

오 총무가 그런 동역자였다. 78년 12월 말, 사진관 문을 닫기 직전 작업복 차림의 한 청년이 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실례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교회를 찾고 있는데 안내를 부탁 드립니다. 저는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 근무하다 고향(전남 담양)에서 가까운 여천석유화학공단으로 직장을 옮겨 방금 도착했습니다. 여수의 첫날 밤을 사랑의 순교자인 손 목사님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며 보내고 싶습니다." 그 말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밤은 늦었고 마지막 버스도 끊긴 상태였다. 나는 일단 그에게 여수제일교회의 한 권사님이 운영하는 하숙집으로 안내해 줬다. 그리고 약속을 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이곳으로 오세요. 그럼 저와 여수제일교회에서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애양원교회로 모셔다 드리지요."

이튿날 그는 정확한 시간에 나타났고, 함께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그가 오 총무다. 그는 여수제일교회에 등록한 후 나와 함께 청년회, 교회학교, 성가대 그리고 호명교회 봉사와 여수성시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충성스럽게 헌신했다. 그의 별명은 '복음의 전천후 사나이'. 지금은 교회 장로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솔직담백한 그의 성격은 당시 회사에서도 인정받았다. 80년대 5공화국 군사정권 시절, 직장 노조와 선교단체는 불온의 대상이었다. '도시산업선교회가 들어가면 회사가 도산한다'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오 장로는 "여수기독교직장선교회 회원들은 합리적이고 온건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기도의 용사입니다. 우리는 산업평화와 노사화합을 통해 회사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라며 늘 성실한 본을 보였다.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이러한 모습, 이게 바로 평신도 사역자의 사명이 아닐까.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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