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성영 (18) 내 찬송 들으시며 어머님은 그렇게…

[역경의 열매] 김성영 (18) 내 찬송 들으시며 어머님은 그렇게… 기사의 사진

1984년 7월28일 무더운 여름 날, 어머니는 이른 아침 아내가 정성껏 끓인 녹두 미음을 몇 번 받아 드셨다. 그리고 깨끗하게 옷을 갈아입혀 드렸다. 어머니는 나와 아내의 손을 꼭 잡으시고 잠시 후 내 품에 안겼다. 나는 한 팔로 어머니를 끌어안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495장) 어머니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전날 늦은 오후, 더위에 피곤하고 지쳐 시원한 요구르트를 사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요구르트를 참 좋아하셨다. 집에 도착해 보니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혼자 머리를 감고 계셨다.

"제가 해드릴게요." 어머니는 "불편한 손으로 어떻게 내 머리를 감겨? 괜찮아"하시며 한사코 만류하셨다. 나는 손잡이 있는 바가지로 물을 부으며 천천히 어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렸다. 입으로 뚜껑을 열고 샴푸를 풀어 어머니의 굳어진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감기다 보니 물이 점점 흘러내려 어머니의 윗옷이 모두 젖고 말았다. 결국 어머니는 목욕을 하시게 됐다.

동작을 멈추고 어머니의 앉으신 뒷모습을 보았다. 활처럼 굽어버린 등뼈, 무릎은 어깨 위까지 당나귀 귀처럼 솟아 있었다.

'아, 나의 어머니! 그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고생하셨기에 저리도 온 몸의 진액이 다 빠졌을까. 이토록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어느새 저리도 작아지신 걸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효와 회한의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결국 나는 그날 저녁, 뜨거운 눈물로 오랫동안 어머니의 몸을 닦아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의병제대하고, 결혼 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사셨다.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늘 내 걱정뿐이었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홀로 된 어머니는 그렇게 마음의 걱정을 안고 사시다 65세에 하나님 품에 안겼다. 나는 사흘 밤을 뜬눈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어머니 곁을 지켰다. 장례식 날 새벽, 잠시 눈을 붙였다.

비몽사몽 중에 흰옷을 입으신 어머니가 야구장 입구에 서 계셨다. 그때 장내 방송이 나왔다. "땅 위에서 승리자가 도착했다." 천천만만의 빛나는 옷을 입은 성도들이 야구경기 결승전에서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이 터져 열광하듯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바로 깨어나 다시 무릎 꿇었다. "주님! 어머니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고향마을 입구 양지 바른 동산에 모셨다. 장례식 후 주일 오후면 어머니를 찾았다. 주변에선 "효자 났다"고들 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생 몸이 불편한 나만을 위해 사신 분이 아니던가. 그렇게 길을 나서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하루는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그토록 못 잊어 찾아가는 어머니는 지금 무덤 속에 계시지 않아요. 천국에서 예수님 옆에 계실 거예요. 하늘나라에."

3년간 주일이면 어머니를 찾아갔던 그 일을 그제야 중지했다. 그리고 어느덧 25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가끔 꿈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는 나의 한쪽 팔을 쓰다듬으며 항상 웃어주신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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