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염성덕] 전국휴교령과 강제실시권 기사의 사진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신군부세력은 전국 대학에 무기한 휴교령을 내렸다. 이튿날인 18일 서울대 1학년생으로 기숙사에 있던 기자는 대학을 접수한 공수부대원들에게 무자비하게 맞았다. 다른 학우들도 매타작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전국 대학(원)생이 상아탑에서 쫓겨나 강제 휴교령이 해제된 2학기 초까지 길거리를 헤맨 것을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6·3사태 때도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6월3일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그해 7월29일까지 대학 문을 닫았다. 6·3사태와 5·18사태 때 강행된 휴교령은 각각 집권세력과 신군부세력이 정치적인 이유로 단행한 폭거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발령된 것은 50년 이후 3차례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행한 교육사연표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이틀째인 50년 6월26일, 그해 12월20일,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이 서거한 이튿날인 10월27일 각급 학교에 휴교령을 내린 것이 전부다.

질병 때문에 전국 단위의 휴교령이 내려진 것은 58년 8월 뇌염이 창궐했던 때라고 교과부는 말한다. 3000여명의 뇌염 환자가 발생했고, 630여명의 학생과 노약자가 숨지자 정부는 전국 초등학교에 휴교령을 발령했다. 황사가 전국을 강타한 2002년 3월22일 서울 경기 충남북 대전 경남 지역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상대로 1일간 휴교 조치를 내렸다. 폭설과 폭우 등 자연재해로 일부 지역에서 휴교령은 내린 일은 종종 있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는 한국전쟁 와중에도 피난처에서 천막을 치고 거적때기를 깔고 후학 양성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교육열이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속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즘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감염자가 급증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상황이 심각해지면 전국에 일제히 휴교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방안이 나온 지난달 31일 신종 플루 확진환자 4235명 가운데 2407명이 완치됐고, 1825명은 치료 중이었다. 사망자는 3명이었다.

전국 휴교령을 성급히 거론했다는 문제가 불거지려고 하자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지난 1일 전국 단위의 휴교령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감염 학생을 먼저 격리한 뒤 학생들의 감염 정도에 따라 학급→학년→학교→소규모 지역→대규모 지역→전국으로 휴교령을 내리는 단계적 접근 방식을 강조한 것이다.

정치권 일부에서 제기하는 신종 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에 대한 특허권 정지, 이른바 강제실시권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신종 플루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인 만큼 강제실시권 발동 여건이 조성됐다고 정치권 일부에서는 주장한다.

하지만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려면 특허법 106조에 따라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시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전 장관은 치료약이 있는 상태에서 강제실시권을 발동하면 국제적 신의에 맞지 않고 국제 사회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표명했다.

신종 플루 사망자가 4명으로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전국 휴교령이나 강제실시권을 검토할 단계가 아니라는 복지부 정책은 수긍할 만하다. 신종 플루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고,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좋지만 장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며 쓸데없는 공포와 불안감을 확산시키는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염성덕 사회부장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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