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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정운찬의 정치권 진입

[백화종 칼럼] 정운찬의 정치권 진입 기사의 사진

"세자는 전하 한 분의 세자가 아니옵니다. 백관과 만백성이 받드는 세자이옵니다. 전하의 마음대로 폐세자는 못하십니다." 황희는 양녕을 폐세자하고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태종에 죽음으로 맞선다(박종화의 '세종대왕' 중에서). 결국 황희는 유배되고 충녕은 세자가 돼 왕위(세종)에 오른다. 그러나 세종은 자신의 세자 책봉에 죽음으로 반대했던 황희를 다시 부르고, 그를 무려 18년간 영의정에 앉혀 조선조 최고의 명재상으로 남게 한다.

보·혁 동거에 대한 기대와 우려

"조상 3대에 재상이 없었음"을 안타까워했다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정운찬 서울대 전 총장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지명됐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에도 반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로서 그동안 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와 대운하 계획 등 많은 경제정책에는 반대 의사를 표명해 왔다. 이번 인사에 대해서는 보수적 대통령과 진보적 총리의 어색한 동거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정책 비판자를 중용했다는 면에서 이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좋은 모양새가 됐고, 보수 성향에서 중도실용주의로 방향을 바꾸고 있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이 대통령과 정 총리(지명자)가 세종과 황희처럼 명대통령 명총리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운찬 총리 지명은 좁은 의미의 국정운영과 별개로 차기 대권과 관련한 정치권의 역학 구도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 자신은 지명 직후 대권과 관련한 질문에서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07년 대선 때 당시 여권(지금의 야권)에서 유력한 후보로 검토된 바 있으며, 본인도 대권에 대한 의지를 간접 피력한 바 있다. 여당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대권의 거의 유일한 유력 후보이고 야당에서는 유력한 후보가 부상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넓은 범위의 정치권에 진입한 것은 대권과 관련하여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이번 인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 총리(지명자)가 대권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총리가 대권을 의식하면 이미지 관리 때문에 대통령과 충돌할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국정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리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다. 청와대 내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심각히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 총리(지명자)가 대권 후보의 하나로 부상할 경우 여권 내에서 막강한 비주류를 이끌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을 자극하여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큰 꿈을 꾸는 이는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정 총리(지명자)가 꼭 대권에 뜻을 두라는 건 아니지만, 그가 대권의 꿈을 꾸는 게 반드시 부정적 효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선 그가 대권에 뜻이 있다면 실패한 총리가 되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그는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대통령과 갈등할 우려가 제기되지만, 그도 과거 경험이나 그의 여권 내 위상에 비추어 국정에 혼란을 초래할 정도로 대통령과 정면 충돌해가지곤 대권에서 그만큼 더 멀어진다는 걸 알 것이다. 그리고 대권의 다크호스들이 많이 출현하면 정치판은 물론 나라 전체도 역동성과 활기를 띠게 마련이다.

물론 대선이 앞으로도 3년 이상 남은 지금부터 나라 전체가 국정은 제쳐둔 채 대권 경쟁에만 몰두한다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잠룡들이 대권을 향해 물밑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걸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권 향방의 키를 쥐고 있는 건 국민이고, 그래서 대권에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인인 국민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 충성 경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민주주의이고, 그래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선거는 최대의 국민축제라 하지 않는가.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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