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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용문사 은행나무의 키

[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용문사 은행나무의 키 기사의 사진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심은 은행나무가 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심었다는 또 다른 전설도 있지만, 어느 전설을 받아들이든 나무의 나이는 1000살을 훌쩍 넘는다.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이 나무의 키를 67m라고 한다. 은행나무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일본에 있는 48m의 은행나무와는 비교도 안 된다. 이 나무는 1962년 조사에서 60m였다. 약 40년 동안 7m나 더 컸다는 얘기다. 하나의 생명체가 천년을 살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여전히 성장 활동을 지속한다는 점이 경이롭다.

그러나 다른 기록들을 돌아보면 이 같은 놀라움에 의문이 생긴다. 문화재청 조사 결과와 전혀 다른 측정 결과가 있는 까닭이다. 우선 용문사 현장 안내판에는 어떤 근거에서인지 나무의 키를 41m 라고 했다. 무려 26m의 차이가 난다. 뿐만 아니다. 1919년 일본 식물학자들은 이 나무의 키를 조사하고 63.6m라고 했다. 다른 결과도 있다. 2005년 지상파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으로 이 나무의 키를 쟀다. 나무 꼭대기까지 닿는 대형 크레인을 설치하고 산림학자와 건축 전문가가 함께 측정했다. 이번엔 40m가 채 안 되는 39.21m였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무 꼭대기 부분의 가지가 부러지고 나무의 키가 줄어들 수는 있다. 또 나무 뿌리 부분에 흙을 덮어주는 복토(覆土)로 나무의 키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천년을 더 살아온 나무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전체 키의 40%나 되는 28m씩 줄어들거나 커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분명히 잘못 측정한 것이다.

'세계 최고'가 아니더라도 용문사 은행나무는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크다. 또 굳이 '세계 최고'라는 이유 때문에 귀하게 여겨온 것도 아니다. 조선 세종 때는 정삼품에 해당하는 당상관 벼슬을 내리면서까지 이 나무를 소중히 지켜왔다. 또 나무가 울음소리를 내 나라의 변고를 미리 알린다는 전설까지 내려올 만큼 우리의 삶과 함께한 나무다. 사람살이가 담긴 더없이 귀중한 자연 유산이자 문화 유산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올바른 인식에서 비롯된다. 의문투성이인 대상에 사랑과 정성을 쏟는 일은 쉽지 않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더 사랑해야 할 나무이기에 정확한 측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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