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성영 (22) 美 여행후 “할 수 있다” 자신감 불끈

[역경의 열매] 김성영 (22) 美 여행후 “할 수 있다” 자신감 불끈 기사의 사진

1987년 8월 미국 LA에서 열린 재미 나사렛형제들 전국대회 참가는 내 인생의 특별한 경험이었다. '전속 간호인' 없이 나 홀로 보름 동안 꿈 같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비로소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 밖으로 더 멀리 전진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간증 강사로 초청받았다.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캄캄한 구름 위엔 태양이 빛나는 또 다른 하늘이 있었다. 태평양 건너 저 멀리엔 또다른 대륙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현지 나사렛형제들 가정에서 민박했다. 나는 LA나사렛 회장인 김형모 장로님 가정에 머물렀다.

첫날부터 나의 미국 여행은 좋은 만남의 연속이었다. 대구 출신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자인 김 장로님은 밸리중앙교회에 출석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여수에서 교편 생활을 했던 장로님이 계시다며 소개해줬다. 바로 70년대 초 여수제일교회 교회학교에서 함께 봉사했던 조경후 장로님이었다. 당시 여수여고 영어교사였던 조 장로님은 우리 부부의 결혼 스토리가 너무 아름다워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들에게 들려주었다. 그 덕분에 등하굣길이면 나와 아내를 보기 위해 여고생들이 사진관 앞에서 서성이곤 했다.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에 거주하는 CCC 나사렛형제들과 가족 2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사회자는 "한국의 갈릴리 여수에서 온 '절망은 없다' 주인공 김성영 형제"라고 소개했다. 나는 "타국에서의 생활이 외롭고 힘들지만,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기에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 비전의 사람이 되자"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갈채를 보냈다. 미국CCC 창설자인 고 빌 브라이트 박사는 "훌륭한 비전의 사람"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꿈 같은 만남이었고, 또 다른 기회들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공식적인 전국대회를 마친 나는 뉴욕과 워싱턴에도 가보자고 용기를 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불편한 몸이었지만 자신감을 갖고 여행에 나섰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홀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낯선 모습들 속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이틀간의 여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내셔널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갤러리스테이션에 도착해보니, 마땅히 찾아갈 곳이 없어 작은 언덕을 넘어 한참을 걸었다. '월터리드 육군병원'이 눈에 보여 무작정 그곳을 찾아갔다. "혹시 불편한 오른손을 수술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물론 그곳에선 "한국의 육군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오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워싱턴 여행 중에 나는 CBS의 간증 프로에도 출연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여수성시화 집회로 만났던 황성수 목사님이 개척한 로스앤젤레스 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나의 간증을 전해들은 한 청년 사업가는 고향에 세운 호명교회에 피아노를 기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계획은 어찌 이리도 선하고 아름다운지. 나는 주님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자 주님은 피아노라는 큰 선물도 안겨주셨다.

미국 여행 이후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불편하면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두려움이란 '스쳐 지나가는 형식'에 불과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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