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김성기칼럼

[김성기 칼럼] ‘민심 장사’ 누구 마음대로

[김성기 칼럼] ‘민심 장사’ 누구 마음대로 기사의 사진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충청권 표를 끌어모아 승리 기반을 마련했다. 취임 후 공개 석상에서 "신행정수도로 재미 좀 봤다"며 충청도 민심을 낚아올린 전략을 자랑했다. 공 들인 본전에 비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공약을 치켜세운 발언이었다. 감언에 넘어간 민심이 너무 순진했다는 말도 된다. 수도 이전 계획은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로 바뀌었지만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과 정쟁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신행정수도는 처음부터 지역 표를 의식한 정치적 술수에 가까웠다. 급조된 공약에 힘입어 참여정부가 탄생했고 이후 야당인 한나라당 역시 총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민심의 동요를 우려한 나머지 참여정부와 여당에 질질 끌려다니기만 했다.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건설 수정 추진' 발언으로 파문이 불거지자 대전 충청 지역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은 누가 텃밭을 건드리느냐며 길길이 뛰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이 충남 공주시 출신 정 내정자를 앞세워 세종시를 변질시키려 한다며 총리 내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심대평 전 대표의 탈당으로 입지가 흔들리는 자유선진당을 대신해 앞으로 충청권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기세다. 정 내정자가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인준을 반대하고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교언으로 민심을 농단하고 순박한 주민들까지 정쟁에 이용하려는 정치세력들…”

대전과 충청 지역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됐다는 '행정도시 무산 음모 저지 충청권 비상대책위원회'는 세종시를 백지화하려는 음모를 중단하라며 충청인들의 거센 저항을 경고했다. 야당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내세우는 최대 무기는 '충청도 민심'이다.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해 총리실을 포함한 9부2처2청을 이전하고 인구 50만명 규모의 광역시로 키워야 한다고 요구한다. 만약 정부가 효율성을 들어 규모를 축소하거나 변질시킨다면 충청도 민심이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충청도 민심을 내세운 야당과 지역 단체들의 주장은 세종시가 충청도민만 위한 도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근거가 약하다. 나아가 충청도 민심이 과연 세종시 원안 관철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세종시가 들어서는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주민들은 대체로 원안을 지지하는 입장이겠지만 충북 청원군 일부 지역 주민들은 세종시 행정구역에서 제외해달라고 한다. 청원군 주민들은 개발이익보다 규제 강화를 우려하고 있다.

일부 인접 시군을 제외한 충남·충북 주민들은 대부분 세종시 규모나 위상에 큰 관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지역 단체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으나 충청도 민심을 운운하는 주장이 마뜩찮다는 반발도 적지 않다. 무주공산을 놓고 경쟁을 벌이듯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서로 민심을 대변하겠다고 설치는 모습도 그렇고 대표성부터 의심스러운 지역 단체들이 몰려다니며 떠드는 게 주민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세종시를 광역시로 만들어 충남도에서 떼어낼 경우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야 선거구가 또 생겨 알토란 같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반을 얻겠지만 인구와 면적이 줄어든 충청 지역에는 무슨 실익이 있겠느냐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야당과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세종시 건설의 타당성이나 실익을 외면하고 충청도 민심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따른다.

노 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로 재미 좀 볼 때 충청도 민심은 이미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런 민심을 다시 방패막이로 삼아 세종시를 관철시키려는 발상은 치졸하다 못해 잔인하게 느껴진다. 교묘한 언사로 민심을 농단하고 순박한 주민들까지 정쟁으로 끌어들여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은 결국 민심의 외면을 받게 된다. 시일이 지나면 누가 어떻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드러나게 마련이다.

김성기 수석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