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성영 (23) 130개였던 교회 수,28년새 550곳으로

[역경의 열매] 김성영 (23) 130개였던 교회 수,28년새 550곳으로 기사의 사진

1987년 미국 여행을 무사히 마친 뒤 분명 홀로서기에 익숙해졌다. 가족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해방된 것이다. 92년부터는 자유롭게 유럽과 이스라엘 성지순례, 일본 방문 등을 통해 또 다른 비전을 키웠다. 갈릴리 해변, 십자가의 길을 거닐며 나를 택하고 불러주심에 감사의 고백을 드렸다. 일본 삿포로에 있는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 문학기념관을 찾았을 땐 새삼 문학이나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작품을 통한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82년 김준곤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시작된 여수성시화운동 집회는 황성수(83년) 김진홍(88·89년) 조용기(90년) 목사님, 이원설(91년) 박사님이 잇따라 주 강사로 참여하며 큰 부흥의 불씨를 일으켰다. 조 목사님이 90년 4월 5∼6일 여수 진남실내체육관에서 인도한 집회에는 연인원 2만명이 참여했다. 92년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님을 모시고 여수성시화운동 10주년 기념성회를 여수제일교회에서 개최했다. 대회장으로서 강단에 올라 기념사를 할 때 벅찬 가슴을 누르며 다시 한번 비전을 선포했다.

"인류 역사는 꿈꾸는 사람들이 창조해 왔고, 또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 역사도 꿈꾸는 사람들이 창조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해방의 꿈이, 군사독재시대 때 민주화의 꿈이, 분단시대 때 평화통일의 꿈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꿈은 이루어졌고 이뤄져가고 있습니다. 여수성시화의 꿈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꿈이요, 위대한 비전입니다. 여수성시화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곳에 모인 성도들은 '예수시'가 될 수 있도록 '한 사람 전도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여수성시화운동은 지금까지 27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여수성시화의 첫 열매로 탄생한 여수기독교직장연합신우회는 회원 수가 늘어 지금은 20개 직장선교회가 가입돼 있다. 해마다 산업평화기도회와 구국기도회, 찬양축제를 열고 있다. 또 여수 지역 4개 기독실업인회(CBMC)와 함께 '두 날개'처럼 여수지역 교회연합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82년 여수성시화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130개였던 교회 수는 현재 550개로 증가했다. 전체 시민의 약 30%인 10만명이 크리스천으로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여수성시화운동이라는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권능으로 잘 자라나 지역과 민족복음화, 세계선교 운동에 동기를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여수세계박람회가 2012년에 열린다. 세계박람회 160년 역사상 인구 30만명의 지방 소도시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왜 하필 여수일까? 하나님은 과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 걸까? 2012년은 여수성시화운동 3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지금 여수지역 교계에서는 여수세계박람회를 '복음 박람회'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사랑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기념관과 기념공원사업 등을 전개하며 기도와 지혜, 헌금을 모으고 있다. 내가 2005년 미우라 아야코 문학기념관을 방문해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처럼, 혹시 성자 손양원 목사님을 통해 또 다른 믿음의 씨앗들이 세계 곳곳에 뿌려지지 않을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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