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기사의 사진

누가복음 15:1∼7

예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다 광야의 유목민이 사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양 300여마리를 자그마한 소년 한 명이 인도합니다. 소년이 작은 종을 딸랑딸랑 치면서 앞서면 300마리가 길게 한 줄로 그 소년을 뒤따라 가는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양 100마리 가운데 한 마리가 낙오됩니다. 그런데 목자는 남아 있는 99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요, 또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목자의 마음은 잃어버린 양에게 있습니다. 99마리가 있다고 안심하지 않고 낙오된 한 마리 양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저서 '긍휼'에서 현대인의 불행은 무관심과 분노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숫자에 매입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에 가치관을 둡니다. 90%면 된 것입니다. 10%는 버려도 괜찮습니다. 게다가 99%면 100점입니다. 하나쯤 잃어버려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하나에 관심을 쏟는 것을 비판하고 분노해버립니다. 잘못된 것은 끊어버립니다. 저 하나 때문에 전체가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며 '불의한 분노'를 안고 삽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가 이렇게 불행해지는 이유입니다. 긍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긍휼은 잃어버린 그 하나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적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목자는 잃어버린 단 한 마리 양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재산이 아니고 마음이며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만 물질화되고, 물량화되고, 숫자화되고, 경영화돼 버렸습니다. 그 소중한 긍휼 하나를 소중히 여기려는 그 마음이 다 없어져서 인간이 비인간화되고 사회가 이렇게 살벌해지고 만 것입니다.

목자는 길 잃은 양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조건을 거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양은 지금 이유야 어떻든 길을 잃었습니다. 멀리 떠나서 어디선가 고생을 했습니다. 그 사실이 중요합니다. 왜 그랬느냐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끔 사랑한다 해도 따지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그래서 되겠느냐고? 앞으로는 이러이러해야 된다고 조건을 걸지 말고 까닭을 묻지 마십시오.

저는 무엇보다 고맙고 귀한 분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과거를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 자체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아니, 현재도 묻지 않으십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부모는 병든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고통을 당하면 더 사랑합니다. 약한 자를 더 사랑합니다. 온 세상은 다 비판해도 사랑은 그것이 아닙니다. 고난당하는 병든 자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깊은 관심, 찾을 때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찾아서 기뻐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 감격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탕자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니,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누리시길 바랍니다.

곽선희 목사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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