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文理)가 트인다는 말이 있다.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도 있지만 옛날 사람들은 대개 글을 깨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곧 한문 글을 막힘없이 읽고, 자유자재로 쓴다는 뜻이다. 서당에서 10년을 공부해야 겨우 문리가 트일 정도였다고 하니 한학이 그리 녹록지 않은 학문이긴 하다.

우리말도 그리 쉬운 언어는 아니다. 좀 어설프게 표현해도 소위 행간의 뜻을 헤아려 '아' 해도 '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대충 넘어갈 뿐, 실상은 말이 안 되고 글이 안 되는 것이 허다하다.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이라는 시구가 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것이다.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으매 마음은 푸근하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널리 회자되다 보니 우리의 귀에도 익숙하다. 사람들은 이 말을 줄여 '소이부답'이라고도 한다. 일상의 표현에 활용할 때는 다음처럼 풀어 쓴다.

'취임 후 1년의 변화를 묻자, 웃되 대답이 없다.'

중국의 고전문학 이론에 환골탈태법이 있다. 남의 표현을 빌려 쓰는 기법인데, '웃되 대답이 없다'에서 '소이부답'이 연상된다면 곧 환골탈태법이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이 표현 속에는 '소이부답심자한'의 '심자한'이 생략돼 있다. 즉 '취임 1년 된 사람의 마음이 여유로워 보인다'는 속뜻이 읽힌다.

그런데 여기서 '웃되'는 적절한 표현일까. '소이부답'을 우리말로 옮겨 적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어떤 연결어미를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답 없이 웃기만 하다' '대답 않고 웃기만 하다' '웃으며 대답 없다' '웃고 대답 않다' 등이 가능하다. 그래도 '웃되 대답이 없다'는 어색하다. '웃되'는 '웃기는 하지만'이란 뜻이다. '웃기는 하지만 대답이 없다'는 뜻인데, 의미 흐름이 논리적이지 않다. '웃을 뿐 대답이 없다'가 제격이다.

연결어미를 잘못 붙이면 표현이 군색해진다. '임은 갔지만 나는 임을 보내지 않았다'를 '임은 갔어도∼'로 하면 논리성이 떨어진다. '임은 갔는데∼'는 맛이 떨어지고, '임은 갔거늘∼'은 의미가 손상된다.

이병갑 교열팀장 bk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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