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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정수익] 임 목사의 소명

[삶의 향기―정수익] 임 목사의 소명 기사의 사진

지난 주말 그를 만나러 선양원에 다녀왔다. 두어 달 전부터 벼르던 발걸음을 어렵사리 뗐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선양원을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70여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이끌어가는 그의 힘들고 외로운 행군을 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선양원 원장 임효주 목사. 그는 알코올 중독자 치유를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 자신 지독한 중독에 걸려 인생 막장까지 갔다가 하나님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입장에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애써 외면하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예고도 없이 선양원을 찾은 날, 그는 역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양원이 자리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의 만덕산 자락에도 어김없이 초가을의 정취가 짙게 깔렸지만 그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6개월여 만에 보는 그의 모습은 초췌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까닭을 알아냈다. 그는 요즘 여러 가지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병원 등과 연계해서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가 하는 일의 힘들고 어려운 정도는 필설로 표현키 어렵다. 지금까지 수많은 동역자들이 나섰지만 번번이 포기했을 정도다. 중독자들과 몸으로 부대끼면서 그들 내면의 갖가지 부정적 감정들을 다스려줘야 하니 오죽하겠는가. 죄책감, 피해의식, 비애, 원망, 외로움, 우울, 의심, 분노, 무력감, 두려움….

하지만 그는 결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병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는 중독자들이 예전의 자기 자신인 것이다. 가끔 그들에게 치유의 기적을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슴속 깊이 뿌리내린 소명감을 이젠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는 영적인 변화 없이는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으로도, 아무리 뛰어난 의술로도 이 병을 고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5년 전 추석 전날이었나보다. 우연하게 취재원으로 만난 그가 학교 후배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때도 예고 없이 그를 찾았다. 경기도 고양시 외곽의 야산에 있는 선양원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20여 명의 중독자들과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울컥했던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들 명절을 즐기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감동이었다. 선양원을 나서면서 거듭 눈물을 훔쳐냈다.

이번에도 역시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 중에 문득 한국 교회 각 교단의 총회가 임박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희생적이어야 할 목사님들이 교단정치라는 이름 아래 눈앞의 이익과 명예, 권력을 위해서 이합집산하고 이전투구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졌다.

아마 선양원의 임 목사에게는 교단정치라는 단어조차 생소할 것이다. 총회가 언제 어디서 열리고,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그에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면서 묘한 억측이 밀려들었다. 선양원 사무실 벽에 붙여놓은 말씀이 허탄한 일에 신경 쓰는 목사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선한 양심을 가져라(벧전 3:16)"

이 땅에는 수많은 '임 목사'들이 있다. 소명감 하나 붙들고서 참 목자, 선한 목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목사님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 교회를 떠받치는 기둥일 터이다. 선양원을 다녀오면서 임 목사에게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힘내라'는 말도.

정수익 종교부장 sag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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