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자랑스럽게 여긴 예는 손기정과 석주명 정도가 아닐까. 1983년 필자는 정무2장관을 지낸 이계순씨를 인터뷰했다. 그가 1940년 교토(京都) 제일고녀에 유학할 때 늘 조센진이라고 깔보고 쑥덕대는 것을 참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세계적인 나비학자 석주명 동경에 오다'라는 큰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일본 신문이 조선 사람을 다룬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켜세운 기사였어요. 눈물이 핑 돌면서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1941년 5월21일 오사카매일신문에 실린 탐방 기사의 핵심은 이렇다. '대영박물관보다 나비 표본이 더 많아 세계 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경기도 개성 송도중학 박물학교실 책임자인 석주명씨(34세)가 얼마 전 펴낸 영문판 '조선산 접류 총목록'은 세계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최종 분류한 조선 나비는 255종인데, 그동안 많은 학자가 신종이라고 이름을 붙여 발표한 것 대다수가 실은 이 255종 중 한 종의 변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석주명씨가 이것을 말살한 것이 500종이 넘는데, 과학적 근거에 의한 작업이어서 아직까지 단 한 건의 항의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일본 학계에서 존경받는 원로이던 규슈제국대학 에자키 데이조 교수는 조선의 중학교 교사인 30대 젊은이를 이렇게 평가했다. '어떤 나비연구가보다도 뛰어나다. 유례없이 완벽한 '조선산 접류 총목록'을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50년 석주명이 죽은 뒤에도 일본에서는 노무라 겐이치와 야쓰마쓰 게이조가 각각 대학 교재인 '곤충학 입문'(1952)과 '응용곤충학'(1955년)에 석주명의 이론을 소개했다. 다카지마 하루오는 일본 동물학회지에 추도문을 발표했고(1954년), 규슈제국대학 시로즈 다카시는 흑백알락나비 학명에 '석(SEOKI)' 자를 헌정해 Hestina Japonika seoki SHIROZU로 했다(1955년). 간사이 의대 시바타니 야쓰히로 교수는 네발나비 과(科)에 '석' 자를 딴 세오키아(seokia)라는 속(屬)을 설정하고 홍줄나비 학명을 Seokia pratti로 했다. 그는 일본 인시학회지 '야도리가(やどりが)' 제125호와 제128호에 석주명의 생애도 소개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한국에서는 석주명에 관해 어떤 글도 발표되지 않았다. 1984년 평전 '석주명'이 발간될 때까지 우리는 그를 철저히 잊었다. 학계에서만 딱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석주명이 명명한 긴지부전나비와 스키타니은점선나비를, 일본인 이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깊은산부전나비와 성진은점선나비로 바꾼 일이다.

이병철('석주명 평전' 저자ㆍ폰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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