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서 (1) 열병으로 시력 잃고 절망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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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중학교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며 졸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안 형편이 안된다며 대신 동네 서당에 보내주셨다. 제사 때 축문이나 지방은 쓰고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너무 슬퍼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하나님은 실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인도하셨다. 그것은 실명(失明)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후, 난 원인 모를 열병을 앓았다. 눈 앞의 사물이 뿌옇게 보이며 두세 달 사이에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이 약을 넣으면 나을 거야."

부모님은 나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5일장을 떠도는 약장수에게서 약을 지어와 눈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눈은 따갑기만 할 뿐 여전히 잘 안 보였다.

이런저런 약을 달여 마셨다. 7㎞나 떨어진 마을까지 다니며 두어 달 침을 맞기도 했다. 그래도 난 별로 걱정을 안했다. 어린 마음에 군대 간 믿음직한 형이 날 병원에만 데리고 가면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6년 여름, 형이 제대할 즈음 내 눈은 이미 밤낮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형은 곧장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 다급해진 아버지도 논을 팔아 서울 갈 경비를 마련해주셨다. 서울 무교동 K안과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두 달 후 드디어 안대를 푸는 날,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안대를 풀며 물었다.

"뭐가 보이니?"

"아뇨. 안 보이는데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쉬면서 형에게 말했다.

"혹시나 기대를 했는데 결국 안되는군요. 이 아이는 열병의 후유증으로 시신경이 손상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귀로 가기도 하는데 이 아이는 시신경에 영향을 주었네요.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13시간 동안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집에 갈 때까지 그 긴 시간 형과 나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동네에 들어섰을 때 형은 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앞으로 내가 책임질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책임질게."

형은 평생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그 말에도 아무런 위로를 받지 못했다. 눈이 안 보이는 데 무슨 책임을 지겠다는 말인가. 형의 손에 이끌려 걸어가는 동안 나는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교수는

1953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했다. 서울맹학교와 총신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에서 석사학위, 럿거스대에서 사회복지정책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총신대 교수이자 세계밀알연합회 총재 등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내게 남은 1%의 가치’ ‘밀알 이야기’ ‘사회봉사의 성서 신학적 이해’ ‘담장 밖의 울고 계신 예수님’ ‘기독교 복지의 근원’ 등이 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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