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재서 (2) 너무도 억울한 생각에 죽음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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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을 가질 때와 절망할 때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병원에 가기 전 나는 앞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뒤 극심한 절망감이 몰려왔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종일 벽에 기댄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우셨다. 밤마다 흐느끼시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동네 어른들은 그저 혀만 끌끌 찼다. 친구들도 몇 번 찾아오더니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내가 침울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머쓱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절망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았다. 하루 종일 빛 하나 들지 않는 깜깜한 방에 갇혀 있는 상태가 지속됐다. 책을 볼 수 없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으니 정말 답답했다.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삶의 의미도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말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반복적으로 죽을 궁리만 하니 서서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난 그때 새삼 깨달았다. 눈물은 그나마 고통이 가벼울 때 나온다는 것을. 눈물은 그래도 희망이 있을 때 나오는 사치품이란 것을.

죽으려고 마음을 먹으니 자연스레 뒤뜰에 있는 감나무가 생각났다. 돌담에 기대 있는 감나무는 평소 내 놀이터였다. 감도 따고 새도 잡았던 그 감나무에 목을 매 죽기로 결심했다.

일기장과 평소 소중히 간직했던 물건들을 아궁이에 넣고 불태웠다. 얼마 후 난 감나무에 끈을 묶고 목을 매려고 시도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지만 죽기도 힘들었다. 결국 포기했다. 억울하다는 생각에 울음이 복받쳐올랐기 때문이다.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왜 내가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가.

죽음이 유보된 대신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루는 너무 길었다. 찾아오는 친구도 없었다. 그동안 봤던 것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있었던 일을 전부 떠올리고 내가 봤던 책도 기억해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생각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면서 친구와 놀았던 기억, 고구마를 캐다 들켜 도망갔던 일, 개울에서 멱을 감고 물장난치던 일을 떠올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학교에 다녀왔건만, 산에 가서 나무하는 기억까지 떠올렸건만, 그래도 시간은 너무 많이 남곤 했다.

말을 하지 않고 하루종일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일터에서 돌아온 가족들은 대꾸도 하지 않는 나에게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날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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