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개헌,할 때 하더라도 기사의 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9일 느닷없이 개헌 의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그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제안했다. 장기집권의 우려는 사라진 대신 단임제의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있던 정당들은 당연히 반대했지만 대통령은 집요했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하겠다는 정당들의 합의와 한나라당의 당론 결정 등을 받아낸 다음인 그해 4월14일 개헌 발의 유보를 선언했다. "저는 이번 일로 세(勢)부족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는 말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어쨌든 개헌발의 소동은 일단락됐다.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국회연설을 막는다면 의사당 돌계단에서라도 하겠다고 우긴 끝이었다.

이 대통령까지 개헌 대열에

그 일로 한나라당은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할 정치적 책무를 진 셈이 됐다. 그 점에서 최근의 개헌 논의는 이해할 수 있다.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신의를 안 지켜서 문제이지 지킨다는 것이야 왜 말리랴.

이번 개헌 논의를 증폭시킨 것은 15일에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이다. 이 대통령은 행정구역 개편,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을 위주로 하되 통치권력, 권력구조 변경 정도를 포함한 개헌이라면 추진할 만하다는 뜻을 밝혔다. 이른바 제한적 개헌론이다. 현실적으로도 '광폭개헌'은 어렵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이참에 '강소국연방제' 개헌을 해야 한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고려될 계제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헌 과제의 합당성 여부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국회의원 선거구제나 행정구역의 개편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개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법률에 유보되어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 과제는 자연 대통령의 임기나 권력구조의 변경에 모아지게 된다. 그 이유는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 문제가 많다는 점이 될 것이다.

87년 헌법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고, 이제 세월이 많이 흐른 데다 우리의 민주적 성숙도도 높아졌으니까 부작용 많은 5년 단임제를 더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노 전 대통령의 4년 연임안 명분이었다. 과연 그런가?

사람의 문제 제도로 푼다?

같은 조건을 역으로 말할 수도 있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정서와 근접한 안이었다는 뜻이 된다. 세월이 20여년이나 흘렀다고 하지만 한 제도가 정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민주적 성숙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증명된 바 없다. 특히 정당과 그 리더들, 그리고 소속 의원들의 언행은 구태의연하다. 5년 단임제에는 긍정적 측면도 많다. 부정적 측면은 제도 자체에서 초래된 것이라기보다 사람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사람의 문제를 제도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 정치인들, 심지어 국민의 일부까지도 진지하게 법과 제도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 존중하지도 않고, 지켜보지도 않은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지금에 와서도 제도 탓을 한다는 것은 민주정치의 성숙이 아직 요원하다고 실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4년 중임제도 해 봤고 의원내각제도 해 봤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런데 다시 그 제도들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듯이 말하고 있다.

대통령제의 종가인 미국이 그 제도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잦은 개헌 덕분이 아니었다. 근대 정치사상 첫 시도였던 만큼 제헌 과정에 문제점도 적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그 제도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전통으로 만들었다. 우리 정치인들, 언제까지 투정만 계속할 것인가.

양심에 비추어 정말로 개헌이 필요하다면 시도하시라. 그러나 돌아서서 또 바꾸자고 할 제도는 제발 채택하지 마시라. 그리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하건대 한번 만이라도 진지하게 우리 헌법의 정신을 국정이나 의정에 구현해 보이고 난 후에 개헌을 운위하시라.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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