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한기호] “출판계를 부탁해” 기사의 사진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창비)가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이른바 '순문학' 출신 작가의 작품으로는 사실상 21세기 들어 최초의 밀리언셀러다.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효과를 본 책이나 두 권을 합한 책을 빼면 유일하다. 설사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최단 기간에 밀리언셀러에 올랐으니 정말 대단하다.



'엄마를 부탁해!'가 밀리언셀러가 된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침체된 분위기에서 출간돼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에 많은 위안을 안겨주었고, 추리 기법이 도입된 글쓰기로 쉽게 읽히며, 출판사가 처음부터 공세적인 마케팅을 펼쳤다는 점 등을 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이유는 몇몇 대형 온라인 서점으로 매출이 집중된 효과가 아닐까 싶다.

사실 온라인 서점이 등장한 지난 10년 동안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의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출판 영업자가 할 일은 온라인 서점의 화면에 신간을 노출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자조가 쏟아지고 있다.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보아야 하니 출판사들은 '빅 타이틀'만 찾는다. 출판사들이 댄 브라운의 '잃어버린 상징'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다 10억원이라는 선인세를 쏟아붓고도 판권을 확보하려 드는 이유가 그런 책은 판매 계획이나마 세워볼 수 있지만 웬만한 작품은 계획서 작성부터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엄마를 부탁해!'가 잘나간다고 출판 시장도 활성화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출판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 다시 경신되고 있다. 방학과 휴가가 겹치는 8월은 출판 매출이 가장 활성화하는 시기다. 하지만 올해 출판 시장은 휴가가 모든 계절로 분산되는 요즘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혀를 찰 정도로 엉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계발서 시장은 암흑 상태로 빠져들었고, 줄 세우기 교육으로 학생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출현으로 바자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이벤트가 취소되고 있어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 경제를 살린다면서 정부가 도서관의 올 한 해 예산을 상반기에 모두 선집행해 버린 탓에 연말까지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온라인 서점의 스테디셀러 반값 할인이야말로 출판 시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올 초 아동서적 베스트셀러 100위권의 80종 이상이 50% 할인 판매될 때 나는 2∼3년 안에 출판 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져들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 몰랐다.

출판사는 대부분 신간 매출로 운영된다. 그런데 검증된 스테디셀러를 대폭 할인 판매하면 가격경쟁력이 없는 신간의 론칭이 불가능하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려우니 출판 경영자는 신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도 아니면 '팔리는 책'을 죽어라고 외쳐댄다. 책의 종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니 독자는 다시 신간을 기피한다. 그러는 사이에 편집자, 작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물론 우수한 외서는 지속적으로 수입된다. 이미 팔리는 그림책의 95%가 외서이니 조금 비중이 높아진다고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출판 생태계의 생산 시스템은 한번 붕괴되면 회복이 어렵다. 그로 인해 유통시장까지 붕괴되면 출판사나 제작 업체들도 연쇄 도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출판 공황 상태의 주범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일의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독자다. 따라서 출판 생태계가 부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 빨리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처음부터 양질의 책을, 싼 가격으로,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도서정가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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