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정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힘을 얻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가 한국은행 손을 들어줬죠. 정 후보자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은법 개정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의 질의에 "(금융회사) 부채와 자산의 성격을 잘 따지지 못한 결함이 있어 세계 금융위기가 왔다는 분석이 있었다"며 "중앙은행이 지금보다 조금 더 감독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조순 전 경제부총리도 한국은행을 거들었습니다. 조 전 부총리는 지난 18일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란 주제로 열린 세계미래포럼 주최 세미나에서 "중앙은행이 보유한 풍부한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전통적인 역할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보이지 않는 손(시장방임주의)은 결국 '맹인의 손'이었고 자본주의를 구한 것은 '보이는 손'(당국의 개입)이었다"고 지적하며 금융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문했습니다.

한국은행법 개정의 핵심은 금융회사에 대한 한은의 자료제출 요구권 확대와 제한적인 단독조사권 부여입니다. 과거에는 은행감독원을 통해 한은이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했지만 은행, 보험, 증권감독원이 금융감독원으로 통합되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죠. 금융감독원에 공동조사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비현실적이고, 그러다 보니 통화량과 유동성 관리가 어렵다는 게 한은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한은이 감독권을 갖게 되면 감독체계 이원화로 피감기관들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반대 이유가 좀 구차해 보입니다. 피감기관들의 부담은 핑계고 실제로는 감독권한을 나누어주기 싫은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중앙은행을 아래로 내려다보려고 하는 관료조직의 인습도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되돌아보면 지금은 양반입니다. 과거에는 한은을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고 부를 정도로 독립성이 낮았죠. 부르면 달려가고, 자료 달라면 득달같이 갖다 바치고, 금리 등 통화정책도 정부가 좌지우지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중앙은행의 권한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중앙은행이 예뻐서 그러겠습니까. 금융시장의 안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니까, 즉 국민을 위해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니까 권한을 주는 것이겠죠. 그런데 우리 정부는 생각이 다른 모양입니다.

변재운 경제대기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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