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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정운찬 청문회가 남긴 것

[백화종 칼럼] 정운찬 청문회가 남긴 것 기사의 사진

미인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는 게 좋다. 너무 가까이에서 보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만일 미인에게 현미경을 들이댄다면? 그 곱던 얼굴도 흠집투성이일 것이다. 더군다나 그 아름다움이 화장발에 의한 것이었다면 역겨움이 치밀지도 모른다. 건너편 잔디가 푸르러 보이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고향에서 위인으로 추앙받기가 쉽지 않은 이치다.

이미지와 다른 실상

얼마 전 기자는 이 난에서 정운찬씨의 총리후보 지명에 대해 모양새가 괜찮다고 평했었다. 보수 정권에 진보 성향의 총리라는 보·혁 동거정부가 중도 조화를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모양새가 괜찮다고 한 데는 굳이 명시하진 않았지만 정 후보가 평소 존경받던 학자로서 사람됨에 큰 흠이 없으리라는 걸 전제로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괜찮다"는 기자의 평가는 그에 대한 청문회를 거치면서 무색하게 됐다. 야당이 들이댄 현미경은 그의 곱던 얼굴에 숨겨져 있던 온갖 흠집들을 드러냈다.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중복게재, 병역회피, 이중취업, 아들의 이중국적, 기업인으로부터의 돈 받은 일, 다운계약서 등 모두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물론 야당이 제기한 이들 의혹 중엔 애먼 것들도 있고, 그래서 정 후보로서는 억울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중 정 후보가 인정한 부분만 놓고 보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저지른 위법 비리보다 결코 적지 않다. 특히 한 평생을 상아탑에서 고고하게 살아왔고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서울대 총장을 지냈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보다는 깨끗한 행정부 수장 후보일 것으로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이와는 별개로, 청문회에서 최고위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해야 할 (여당)청문위원들이 후보자의 비리를 감싸는 모습은 그들을 대표로 뽑은 국민을 슬프게 하기에 족했다. 국민들이나 여기 질문하는 분들이나 다 후보자가 저지른 만큼의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호통, 후보자가 해명하도록 자신의 질문 시간을 양보하는가 하면 후보자가 시인하는 비위도 비위가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 등은 코미디였다.

야당은 이러한 흠집들을 이유로 정 후보의 사퇴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애초부터 어림없는 소리다. 총리임명동의안은 결국 투표에 부쳐질 것이고, 여당 내에서 항명 파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 후보는 총리가 될 것이다.

총리야 되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 그가 청문회에서 드러난 자신의 흠집들을 덮고도 남을 만큼 훌륭한 총리가 돼줄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청문회 모두 발언을 통해 저명한 학자 출신답게 총리로서의 역할을 잘 정리해 밝혔다. 그 중에서 기자가 주목하는 대목은 "대통령에게도 할 말은 하겠으며 국민에게도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다"는 말과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말이다.

기자는 두 대목의 말이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진보 성향인 그가 총리로서 할 일은, 태생적으로 보수 성향인 이 정권이 너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려 할 경우 이를 제어하는 균형자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 후보가 중도를 향해 보수 쪽으로 지레 이동할 것이 아니라 진보 쪽에 서 있음으로 해서 균형을 이루어 이 정권이 결과적으로 중도를 걷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야당 쪽에선 정 후보가 벌써부터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감세 등 경제 정책에서 소신을 꺾고 정권에 코드를 맞추고 있다는 비판이다.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흠집이 많은 공직 후보들도 걸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위 공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청문회를 보고 몸가짐을 가다듬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 쓸데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또 정 후보의 경우, 상처 난 이미지를 만회하고 많은 흠집들을 참아낸 국민에게 더 많이 봉사하여 이름을 남길 만큼 큰 사람이 된다면 그것도 청문회의 소득일 터이다.

백화종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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