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정희] 해봤어? 기사의 사진

다음 사항을 해봤는가? 해봤다면 체크해 보라.

노래방에 혼자 가기, 지하철 틈새에 추락, 동성으로부터의 고백 받기, 혼자 불고기 먹기, 성령체험, 양다리, 실연, 10㎏ 감량, 마약, 부모님 사망, 2m 위에서 추락, 10만원 이상 줍기, 텔레비전 출연, 이혼, 독신, 교통사고 등등.

가끔 특강을 할 기회가 있으면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말놀이 '해봤어?'를 진행하곤 한다. 평범한 질문에서부터 엉뚱하고 얄궂은 질문까지 망라해 위와 같은 질문이 대략 150개 항목이다. 20대 초반은 50개 미만, 30대는 70개 전후, 40대 이상은 100개 전후로 체크한다. 숫자의 많고 적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만 살아온 세월만큼 해본 것도 많더라는 것이다.

놀이의 원전은 김영하 소설 '퀴즈쇼'이다. 원전 항목을 바탕으로 각자가 상황에 맞게 늘리거나 줄이면 된다. 이 가운데 특이하거나 의미 있는 체크사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유도하다 보면 포복절도할 웃음, 감동과 애잔함이 심심찮게 터져나와 재미에 폭 빠지게 된다. 사족을 달지 못하게 하는 스피드한 진행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머니. "식당에서 혼자 불고기 먹어 봤다." "왜요?" "네가 거꾸로 들어서 죽을 고비 넘기며 낳았는데 네 아부지란 작자가…살아야겠다 싶어서 혼자 3인분 시켜 먹었다."

아내. "나 TV에 나온 여자야." "당신이? 근데 왜 난 몰랐지?" "결혼 전에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가는데 9시 뉴스 카메라맨이 날씨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더라고. 그날 밤 당신만 전화 안 하더라. 섭섭했었어."

딸. "혼자 노래방에 가봤다고. 왜?" "지난번 수능 모의고사 때 엄마 아버지가 시험 못 봤다고 구박하는 바람에 화나서 혼자 갔었어."

동생. "2m 높이서 추락을 했었다구. 어디서?" "군대에서. 날 궂으면 쩔쩔매는 게 그 때문이야. 군대 면제받은 형이 알겠어?"

지난 추석 밑 가족을 대상으로 한 놀이의 일부다. 가족에 대해 서로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한가위는 공동체의 동시 토크쇼 시간이다. 소통의 시간이다. 한데 우리는 언어를 배웠어도 이야기에 약하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고 말했다. 한데 자기만의 이야기는 꼭 타인과 함께할 때 나오며, 그 이야기는 그가 소속된 공동체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개인 이야기가 공유되는 장인 셈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공유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대화를 위한 치료', 즉 '토킹큐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인데 치료 없이 행복을 가져올 순 없는 법이다.

예수는 극단의 결합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은 나의 상대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봐야 비로소 행복해짐을 의미한다.

한데 우리의 추석 토크쇼는 공동체 외의 이야기에 빠지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본질은 외면이다. 대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싫어 추석 드라마에 빠지고, 정치·경제의 비관을 담은 신문을 보며 공공의 적을 만든다. 서로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토킹큐어 없이 추석 연휴를 보내다 노부모 봉양, 선산 관리, 유산 분할 등의 문제를 거론하다 보면 상처만 안고 돌아온다.

감정을 담을 수 없는 하이퍼텍스트가 이야기를 대신하는 세상이다. 추석 연휴, 사랑을 안고 이야기하라. 가족 간의 침묵은 불행이 파놓은 함정이다.

전정희 문화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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