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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나뭇결에 담긴 사람살이

[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나뭇결에 담긴 사람살이 기사의 사진

토지를 소유하고, 호적에 올린 이름도 갖고 있는 나무가 관심을 모은다. 경북 예천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石松靈)이 그 나무다. 예천군은 이 특별한 나무 석송령이 기네스북에 등재되도록 추진하는 데 이어 최근에는 독립영화 출연까지 적극 지원할 계획이란다.

석송령은 600살 된 소나무로, 토지 5258㎡를 소유했다. 1927년 이 마을에 살던 한 어른이 자신의 재산을 물려준 것이다. '영혼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의 이름, 석송령도 그때 붙었다.

그후 석송령은 자신의 재산에 대한 토지세를 성실히 납부하고 있으며, 토지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나눠주고 있다. 기네스북에 등재되고도 남을 만큼 장한 나무다.

석송령보다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 나무가 있다. 공교롭게도 같은 예천군에 있다.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 들판에 서 있는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의 팽나무다. 황목근은 1만2232㎡의 토지를 가졌다. 석송령이 가진 토지의 배가 넘는다. 1939년 마을 공동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석송령이 토지를 가진 때로부터 12년 뒤다. 황목근의 토지에서 얻어지는 수익은 공동 재산을 모은 애초의 뜻에 알맞춤하게 쓰인다. 단오와 백중 때 벌이는 마을 잔치의 비용은 물론이고, 석송령처럼 장학 기금으로도 이용된다.

토지 소유 순서에서는 석송령이 조금 앞서지만 규모에선 황목근이 훨씬 앞선다. 게다가 석송령은 한 재산가의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황목근은 마을 사람들이 끼니를 줄여가면서 살뜰히 만들어낸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어서 더 소중하다.

어렵사리 지켜온 우리네 살림살이의 내력을 담고 서 있는 황목근이건만 석송령에 비해 일반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재산을 가진 나무'라는 명분이 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네스북에 맞춤한 명분에 관심을 집중하는 동안 재산을 만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쌀 한 톨을 아끼며 지켜온,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래된 나무에는 사람살이의 내력이 담기게 마련이다. 나뭇결 깊이 새겨진 사람살이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 곧 나무의 가치를 더 소중히 보전하는 일이지 싶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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