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교통경찰은 어디 가 있나 기사의 사진

내가 소속된 교회의 장로 한 분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신앙과 사회생활이 두루 모본이라는 데 어느 교인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 점잖은 분이 지난해 장로 피택 후 교회 신문에 썼던 인사말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제가 운전하는 차에 교인을 태우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운전 중 불쑥 튀어나오는 경건하지 못한 말 때문입니다 …."

1978년부터 10여년 동안 상사로 모시고 함께 일했던 대선배 여기자 한 분의 일화 한 토막. 회사 동료들은 그가 화를 내는 것은커녕 말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이십 몇 년 전 그 천사 같은 선배가 '마이카'를 장만한 뒤 동료들은 핸들을 잡은 그의 모습에 몹시 당혹했다. 차에 동승해본 사람들은 그 곱고 인자한 선배가 "개××!"를 연발하며 운전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어지간히 수양한 성직자 정도면 혹시 모를까 운전석에 앉으면 시시각각 쌍욕이 튀어나오는 풍경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대로다. 운전면허 취득과정이 걸레 같아서인지 근본적으로 심성이 고약하게들 꼬인 탓인지, 내 눈에는 자동차 운전 부적격자가 우리나라에 너무 많다. 교통법규 위반을 무슨 무용담이나 솜씨 자랑하듯 하는 치들이 도로마다 깔려 있다. 그들은 교통법규 잘 지키는 사람들을 얼간이 쯤으로 여길 것이다.

“자동차 운전 부적격자가 너무 많다. 그들은 법규 위반을 자랑스러워 한다”

교차로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꼬리물기 식으로 차 앞부분을 마냥 들이밀어 교통체증을 가중시키는 비양심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운전자를 철저히 단속한다던 약속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교차로에서 그런 걸 단속하는 경찰을 나는 못 봤다. 위반을 하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답답해서 그렇지 비교적 양질이다. 깜박이등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차로변경을 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운전자가 이 범주에 속한다.

신호등에 맞춰 보행자가 오가는 횡단보도를 마구 통과하는 것과, 몇 초를 못 참고 클랙슨을 빵빵대며 앞 차를 윽박지르는 습관성 조급증도 불변이다. 그들에게 안전거리 유지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때의 암기사항일 뿐이다. 이런 데는 남녀가 다름없고, 슬프게도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청년층이 더하다. 그들은 보행자로 입장이 바뀌면 대개 자식 손을 잡고 무단횡단, 보행신호 위반을 감행한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떤 악순환이 반복될지 뻔하다.

얼마 전, 런던 도심의 교통신호등 100개가 곧 작동을 멈출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일부 신문에 실렸다. 신호등을 없앴더니 운전자와 보행자들이 더 조심을 하게 돼 교통사고가 줄었다는 네덜란드 교통전문가 한스 몬더만의 '교통관리이론'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몬더만 이론이 시험운용된 곳은 네덜란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영국 미국의 일부 교통혼잡 도시였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 교통관리이론을 지금 국내에 들여온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내년 1월부터 서울시내를 운행하는 일부 노선버스에 카메라를 두 대씩 장착해 일반차량의 버스전용차로 침범과 주·정차위반을 단속할 것이라고 한다. 괜찮은 발상의 하나로 인정하지만 거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전용차로를 확보한 버스들부터 엄히 교통법규를 지키게 하라는 요구다. 모범 버스운전기사들에게는 송구하지만 대체로 버스기사들은 다른 차로까지 맘대로 넘나드니까 하는 말이다. 그들도 신호위반, 불법 주·정차, 난폭운전을 예사로 한다.

서울의 88올림픽대로에서 여의도 63빌딩 쪽으로 나가기 직전의 맨바깥 차로는 출·퇴근 시간대와, 주말 휴일엔 온종일 붐빈다. 자동차들은 수백m씩 한참을 줄지어 엉금엉금 빠져나간다. 서울의 다른 곳도 포함해 비슷한 데가 전국에 수두룩할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으레 얌체 끼어들기가 극성인데도 교통경찰은 없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일손이 달리면 그 흔한 무인 감시카메라 하나씩만 설치해도 될 텐데 그마저 없다. 반칙을 일삼는 자한테 처벌보다 나은 약이 있던가.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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