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 칠판을 높은 가격에 사 주고 업체로부터 수백만원씩의 뒷돈을 받은 학교 교장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입건됐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칠판에서 음이온이 배출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음이온이 나오기는커녕 빛 반사가 심해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을 초래했다지요.

"돈 벌려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한 소형 건설사 사장이 사석에서 한 말입니다. 학교나 관공서는 품질에 대한 심사가 기업에 비해 까다롭지 않고 가격도 후해 마진이 상당히 좋답니다. 일단 공무원만 저녁 자리로 불러내 인연을 맺어 놓으면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는군요. 예산이 남았으니 납품을 하거나 공사를 하자는 겁니다. 물론 적절히 사례를 해야 관계가 유지되겠죠.

경제학에서 많이 인용하는 말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인인, 다시 말해 주인이 따로 없는 것은 남용이 돼 결국 피폐해진다는 뜻입니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예산이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심지어 나랏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2.5% 늘어난 291조8000억원으로 짜였습니다.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감세 영향까지 겹쳐 세수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죠. 그래도 내년에 32조원의 재정 적자가 발생하고, 그러면서 국가 부채는 계속 늘어 2013년에는 493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랍니다. 이 정도면 정말 위험한 수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세출 예산을 알차게 짜고 철저히 집행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데 쓰이고 있는지, 없어도 되는 예산은 아닌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야 합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08 회계연도 결산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1개 정부 부처가 애초 배정된 사업에 쓰지 않고 다른 사업비로 돌려쓴 전용액이 843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262억원이 연말인 11∼12월에 집행됐다고 하더군요. 부처별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1542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중 87%가 연말에 쓰였답니다. 하긴 연말이 되면 일선 학교가 공사판이 된다는 말이 있더군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기왕에 배정 받은 예산이니까 일단은 쓰고 보자는 거겠죠. 그래야 내년에 예산이 깎이지 않으니까요. 나랏돈이 아니고 자기 돈이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다시 통장에 집어넣지 않겠습니까.

변재운 경제대기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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