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이근식] 상생의 갈등이 필요한 시대 기사의 사진

"새들은 양쪽 날개로 납니다." 이 말은 미국의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가 당신은 우익입니까, 좌익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한 말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19세기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모든 인간사에서 서로 생명력을 갖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고유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 갈등하는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일 배타적으로 하나의 목표만 추구한다면 하나는 과다하게 되고 다른 것은 부족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원래 배타적으로 추구하던 목적도 부패하거나 상실하게 되기 마련이다. 원래 의회와 행정부 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 나온 이 말은 많은 갈등관계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배타적 목표 추구가 실패 불러

이해관계와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 간에는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갈등 덕분에 각 존재들은 존재의 의의를 가질 수 있으며, 상호 갈등에서 발생하는 긴장관계를 통해 양쪽 모두 타락과 안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기심과 이타심, 자유와 평등,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시장과 정부,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 진보와 보수, 자본가와 노동자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기심과 이타심 중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며, 평등에 대한 고려 없는 자유만의 추구는 자유를 타락시킬 것이다. 또 자유 없는 평등은 생의 의미를 잃게 할 것이다. 정부라는 사회주의 부문이 전연 없는 100% 자본주의 경제는 시장의 실패로 인해 파탄을 맞게 될 것이며, 시장경제가 전연 없는 100% 사회주의 경제는 효율성도, 개인 자유도 실종된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어느 한 가지 정책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장경제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가 전혀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보수주의자만 존재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의 현실감각 없이 진보주의자들의 이상주의만으로 추진되는 개혁은 시행착오와 혼란만 초래할 것이고, 노동자와 자본가 어느 한쪽만으로는 기업 경영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상생의 관점에서 파악하면 많은 사회 갈등을 상생의 갈등관계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서로 상대방을 타도의 대상이나 이용 수단으로만 파악해 상호간에 증오에 찬 아귀다툼을 벌이는 갈등을 적대적 갈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는 상생의 갈등이 아니라 적대적 갈등이 지배해 왔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기업주와 노동자의 관계가 모두 그러하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유행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근로자들은 단지 돈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고,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이름으로 이를 장려함으로써 노사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왔다.

또 현 정부는 진보적 성향의 공공기관장들을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무리한 방법으로 강제 퇴출시키고, 법치주의 확립이란 명분으로 연행자와 구속자를 대폭 확대시킴으로써 이념 대립을 악화시켜 왔다.

새는 양쪽 날개로 난다

상생적 갈등과 적대적 갈등을 가르는 것은 관용의 존재 여부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 말에 귀 기울이는 관용의 정신이 있을 때 갈등은 상생의 갈등이 될 것이고, 반대로 관용의 정신이 없는 사회는 적대적 갈등으로 인해 황폐해지고 퇴보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부터 현 정부는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4대강 개발, 금산분리 완화, 재벌 규제 완화, 미디어법 개정과 같은 주요 정책들을 모두 다 결정한 다음 이제 와서 이러한 정책 기조 변경이 얼마나 큰 성과를 나타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도를 표방하는 새 총리도 취임했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고 고단한 서민들의 삶의 짊을 덜어주면 좋겠다.

이근식(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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