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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시비를 위한 시비

[백화종 칼럼] 시비를 위한 시비 기사의 사진

오늘은 한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의 말꼬리를 한번 물고 늘어져봐야겠다. 그들이 좋은 취지로 한 말들인 줄 알면서도 듣기에 따라선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비틀어서 시비를 위한 시비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자가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심통을 부리는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여도 무방하겠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내년 G20 정상회의 유치 보고를 위한 특별기자회견에서 "이번에 외국 갔다 와서 이건 정말 정치권에 보고하고 싶어서 여야를 불렀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에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불응한 것을 가리킨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국정과 관련하여 만나자고 초청할 경우 야당 대표로서는 웬만하면 응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한데 이 대통령은 이를 거절당했고, 해서 속이 상했을 법도 하다.

무심코 한 말 속의 권위주의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 중에 "불렀다"는 표현이 좀 뭣하다. 이 대통령으로서야 별 뜻 없이 평소 말하는 대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렀다"는 것은 보통 아랫사람을 오라고 할 때 쓰는 표현으로서 여야 대표, 특히 야당 대표에게 쓰는 표현으로선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얘기지만, 이 회견 때 청와대가 기자들에게 논란의 우려가 있는 세종시 문제는 질문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기자들이 이를 받아들인 건 권위주의 시절을 연상케 하는 퇴행적 모습이었다.

다음, 정운찬 총리다. 정 총리는 지난달 29일 총리 취임식에서 "가마를 타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가슴에 되새기겠다"는 말로 취임사를 맺었다. 옛날로 말하자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으니 만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헤아리겠다는 갸륵한 취지일 터이다. 그러나 요즘 와선 공직자는 국민의 심부름꾼, 즉 공복(公僕)으로 일컬어지며 총리도 예외가 아니다. 기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총리는 국민의 큰 심부름꾼일 뿐 가마 타는 사람이 아니고, 국민은 총리의 가마를 맬 가마꾼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받들어야 할 주인이라는 것이다. 정 총리가 혹시라도 자신을 가마 탄 사람으로, 국민을 가마꾼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도자일수록 말 가려서 해야

그 다음은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취임식에서 "권익위 직원 모두가 조선시대의 어사 박문수가 돼 국민 여러분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면서 자신이 그들의 마패가 되겠다는 요지의 취임사를 했다. 권익위 직원들이 국민의 편에 서서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도록 자신이 외압 등에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겠다는 뜻일 터이다. 그러나 어사의 마패는 무소불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위원장의 "마패가 되겠다"는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건 이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남다른 기여를 했고 여권의 주류인 친이명박계를 이끄는 실세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국가기관은 국민권익위만 있는 게 아닌데, 자타가 공인하는 정권의 실세가 이런 비유를 할 경우 오버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지난주에 있었던 정권 최고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사들의 공식적인 발언 가운데 말꼬리를 잡을 수 있는 것들을 뽑아봤다. 글머리에서 밝혔듯 비유적이고 관용적인 표현이며 말한 사람들의 본의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선의를 악의로 해석하는 억지를 부려본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너나없이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배 있는 경우가 많음을 한번 일깨우고 싶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같은 취지의 말을 하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라 해서 예외가 아니겠지만 국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인사들은 더욱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

전무이사 大記者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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