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운 대기자의 세상보기] 사회적 자본과 세종시 문제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드디어 대한민국도 선진국이 됐는가. 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국민들은 자긍심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어쩐지 씁쓸하다. 온갖 비교가 OECD 가입국가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매번 꼴찌 수준이다. 자긍심은커녕 자괴감만 드는 것 같다.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긍정적 순위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것은 경제성장률과 수출 등 일부 경제관련 지표 정도. 민영의료보험이 도입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건강보험제도의 정착으로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반면 부정적 순위에서는 셀수 없을 만큼 상위 랭킹이 많다. 소득 양극화, 연간 노동시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비용, 대외 원조 지출, 사교육비 지출, 자살률, 교통사고율 등.

OECD 꼴찌 수준인 ‘정부 신뢰도’

삼성경제연구소가 얼마 전 창피한 순위를 또 하나 내놨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지수를 비교한 결과 OECD 29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22위로 나왔다는 것. 사회적 자본은 신뢰와 사회규범, 네트워크, 사회구조 등 사회의 무형자산을 일컫는 개념으로 국가발전과 사회안정을 위한 핵심 조건이다. 4개 분야에서 가장 뒤떨어진 것은 '신뢰지수'로 24위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동원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특히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사례가 많고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할 정도로 법질서 준수 의식도 낮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사례가 많다'는 대목이 참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이 아닐까. 대통령이 아무리 필요성을 역설해도 상당수 국민은 이를 '한반도 대운하를 파기 위한 꼼수'라거나 '대통령 치적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어찌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 싶어 한숨이 다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30일 '미쇠고기 수입반대 불법 폭력 촛불시위'라는 백서에서 지난해 촛불시위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피해액이 3조7513억원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그런 추산이 맞다면 이 또한 정부에 대한 불신, 즉 일천한 사회적 자본에서 비롯된 손실이다.

그렇다고 국민을 탓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인이요, 공직자들은 종복이거늘 종복이 주인에게 신뢰를 구해야 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지금 또 한번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바로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이다. 정부는 기존 계획대로 건설을 강행할 경우 세종시는 유령도시가 되고 국정은 비효율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충청권은 행정부처가 계획대로 이전해야 자족도시가 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도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만 현 정부의 추진력을 보면 원안에서 수정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대강과 마찬가지로 어차피 국민은 정답을 모른 채 헷갈리기만 하다 따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또 한번 정부에 대한 신뢰의 손상을 입혀 우리나라 사회적 자본을 더욱 추락시킬 것이라는 데 있다.

원안 수정하려면 반성·사과부터

정부와 여당은 세종시를 정치적 이해타산에서 나온 '기형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세종시로 재미 좀 봤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멘트를 그 증거로 내세우며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그럼 현 정부는 면피가 될까.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은 선거때 세종시의 원안 추진을 수도 없이 강조해 왔다. 충청권의 표 때문이다. 그것이 노 전 대통령의 대못질에 걸려든 것이었을망정 자신들도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세종시를 이용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즉 필요할 때는 써먹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바꾸는 것 아니냐고 해도 반박하기가 어렵게 됐다.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진실로 국가적 차원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이 불가하다고 판단되면 수정해서 추진하는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그러려면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표가 직접 국민에게 "우리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진솔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나마 그것이 우리의 사회적 자본,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어느정도 지키는 일이 아닐까.

변재운 대기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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