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정승훈] 패장을 위한 변명 기사의 사진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야구팀 감독이 열성적인 홈 팬들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홈 경기에서 패했다. 감독은 경기에 진 뒤 분을 참지 못하고 더그아웃에 있는 책상을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팬들은 다음 시즌 개막 때까지 경기장에서 감독을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팬들은 감독과 비슷한 울분을 느꼈다며 그를 '용장(勇將)'이라고 칭찬해줄까.

다음 두 번째 질문. 아이와 함께 응원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안타깝게도 경기는 응원팀의 패배로 끝났다. 경기 후 응원팀의 감독은 승리한 팀 더그아웃을 찾아 상대팀 감독과 선수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 모습을 보고서 아이에게 "경기에 지고도 상대팀 더그아웃을 찾아가다니 승부욕이 떨어진다"고 얘기할 것인가, 아니면 "경기를 할 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할 것인가.

롯데 자이언츠의 로이스터 감독은 2년 연속 패장(敗將)으로 낙인찍혔다. 만년 꼴찌팀으로 인식되었던 롯데를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일궜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는 3패(2008년), 1승3패(2009년)로 졌기 때문이다. 단기전에 필요한 전술을 모른다느니, (실수 연발의) 팀이 변한 게 없다느니 하는 게 비난의 주된 이유다.

지난 3일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패한 뒤 한복을 입고 팬들에게 인사한 것을 놓고도, 상대 팀 감독과 선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것을 놓고도 비난이 쏟아졌다. 어떻게 전투에서 패한 장수가 히히덕거리고 더구나 적진에 찾아가 적과 껴안느냐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로이스터 감독은 앞으로 6개월간 경기장에서는 만나지 못할 홈 팬들을 향해 명절날인 만큼 한복으로 갈아입고 인사를 했다. 남아있던 홈 팬들은 비록 1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의 '가을 야구'였지만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 숱한 어려움을 이겨냈던 감독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로이스터 감독은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상대팀 더그아웃을 찾아가 덕담도 했다.

쉽게 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그로 인해 이젠 별로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됐다. 2009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1위팀 KIA 타이거즈의 주축 선발투수 양현종은 지난달 2일 자신의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1일 열린) 롯데와의 마지막 19차전을 승리하고 나가려는데 롯데 로이스터 감독님이 우리 더그아웃으로 통역과 함께 뛰어오셨다…19차전 동안 수고했다고, 남은 게임 행운을 빈다는 말을 우리 감독님께 전하라고 하셨다…다른 팀 감독이고 미국 사람이지만 정말로 멋진 감독님이신 것 같다…이게 프로야구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양현종과 생각이 비슷한 팬들이 많다. 경기에선 젖먹던 힘까지 짜내 이기도록 노력하되 경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팬들은 승리에 대해 더 달게 느낀다. 승리는 패배 없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긴 경기에서 상대 팀 감독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진 팀의 감독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야구에선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로이스터 감독으로선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감독끼리 악수하는 경우는 쉽게 보기 힘들지만 로이스터 감독은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엔 결과에 상관없이 상대 팀 감독을 찾아가 인사했다. 한국 프로야구와 상대 팀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면 힘든 일이다.

야구 경기장에서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축구 경기장에서도, 농구 경기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로농구연맹(KBL) 전육 총재는 5일 "우리 농구는 실력도 떨어지지만 매너도 빵점"이라고 일갈했다. 경기에 지면 일단 심판 탓을 하는 감독을 거론하며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15일부터는 2009∼2010 KCC 프로농구 경기가 시작된다. 경기에 졌을 때 심판에게 항의하는 게 아니라 승리한 팀 감독에게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네는 감독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정승훈 체육부 차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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