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김두환] 갈릴레이와 우주시대 기사의 사진

인류의 우주여행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달뿐 아니라 화성에까지 우주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주여행의 현실화와 함께 우주의 끝을 관측하고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는 천문우주과학 또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한동안 다른 나라의 우주개발을 바라만 보았던 우리나라도 최근 우주개발 시대를 향한 기지개를 폈다.

20세기 이후 개화되기 시작한 천문우주과학에 대한 변화는 중세의 과학암흑기로부터 탈피해 우주과학에 있어 혁명을 일으키는 데 공헌한 천문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그 중 대표적인 천문학자가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세상을 뒤집었던 地動說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약 1500년 동안 서양의 우주관은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당연히 천동설은 불변의 진리요 신의 성전처럼 유럽 사상계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의 우주체계는 완벽한 지구중심의 우주구조론이었고, 기독교 교리의 하나로 숭상받았다.

그러나 1530년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을 확립시킨 이가 바로 갈릴레이다. 1609년 갈릴레이는 당시 망원경을 개량한 천체망원경으로 인류 최초로 천체를 관측하였다. 그는 목성에 있는 위성 4개를 발견했는가 하면, 지구도 화성이나 목성과 같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론을 수용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확립하기 위해 '천문대화'를 집필하였다. 1632년의 일이다. 이 책은 당시까지 보편적 진리로 믿어 왔던 지구중심의 우주구조론을 반박하고 코페르니쿠스가 구상한 태양중심의 지동설을 변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로마 교황의 분노를 샀고 교황청에 의해 곧바로 금서(禁書) 조치가 내려졌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에 회부돼 처형 위기에 처했다. 그는 결국 자기 주장을 철회하고 "앞으로 절대로 이단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 후 귀가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오랜 세월 이단자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러다 최근에야 비로소 교황청에 의해 완전 복권되었다.

갈릴레이와 같은 시기의 이탈리아 철학자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세계의 무한성과 지동설을 결합하여 무한 우주 속에 무한히 많은 태양계가 있다는 우주관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장 역시 기독교의 교리와 상충되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에 처해졌다. 이처럼 중세 과학암흑기에는 성서에 따른 지구중심설이 보편적인 진리였고, 그 외 어떠한 우주관도 인정되지 않았다.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 4개를 발견하고 태양의 흑점을 관측하는 등 당시 중세 유럽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주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초석이 된 것이다.

올해는 갈릴레이가 최초로 망원경으로 천체관측한 지 400년이 되는 해다. 유엔과 국제천문연맹(IAU)은 천체 관측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를 '2009 세계천문의 해'로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는 천문·우주과학 관련 학회나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세미나, 심포지엄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세계 천문의 해'를 즐기자

우리나라도 지난 1월 '2009 세계천문의 해'를 선포한 후 조직위원회에서 남녀노소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개최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도 세계적 규모로 기획된 지구촌 축제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고, 나아가 우주의 신비와 이를 연구하는 천문학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달 중 올림픽 공원에서 아마추어 천문회원들이 400대의 천체망원경으로 동시에 별을 관측하는 것이다. 이 이벤트가 성사되면 기네스북에 오르게 된다.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천문우주과학을 가까이에서 접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 생각된다.

김두환 (아주대 교수· 우주정보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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