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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상근] 배병우,사진으로 말하다

[삶의 향기―김상근] 배병우,사진으로 말하다 기사의 사진

배병우 사진전이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흔히 배 선생을 '소나무 작가'로 소개하지만 그것은 이 괴력을 가진 예술가를 잘못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사진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진은 피사체를 이차원의 평면에 고정시키기 위한 기억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배병우는 작품 속의 소나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묻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 한심한 인간아. 너의 본질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그의 소나무 사진이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배병우를 지나치게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배병우의 이번 전시회에는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에서 작업했던 사진이 함께 전시돼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의 예술세계가 이제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중첩하는 스페인의 고성(古城)까지 담았으니 우리까지 덩달아 신이 난다. 스페인이 어떤 나라인가? 엘 그레코와 고야와 피카소와 가우디를 자랑하는 문화대국이 아닌가? 그런데 스페인의 콧대 높은 사람들이 알함브라 궁전을 개방하면서 한국의 한 사진작가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배병우는 알함브라 궁전을 찍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문장은 비예술적인 표현이지만 이번 경우에만 이런 무례한 표현을 용서하시라. 실제로 그는 알함브라 궁전을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찍어달라는 스페인 사람들의 요구에 배병우는 알함브라 궁전을 찍지 않음으로써 그들에게 말을 건넸고, 물었고,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수년 전 여름에 가족과 함께 알함브라 궁전을 직접 답사했고, 그 붉은색 스페인 고성의 아름다움에 매료당했던 나는 배병우가 사진으로 말하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깨진 것이다.

아마 알함브라 궁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스페인 사람들은 배병우의 드러나지 않는 알함브라 사진에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 유서 깊은 고성의 위풍당당한 전모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를 통한 배병우의 시각은 역사적 유물에 불과한 죽어있는 건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정신을 읽어내고 있다.

1492년, 새로운 인류가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발견되었던 바로 그 해에 스페인 남부의 무슬림들은 알함브라 궁전에서 최후를 맞았다. 가톨릭 군대에 영토를 빼앗기고 유럽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 아련했던 역사의 기억을 배병우는 알함브라 궁전 위로 떠오른 초승달로, 죽음 이후의 희망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의 끝자락으로 표현했다. 알함브라 궁전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며 그라나다 관광산업의 꽃이라고 자랑하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배병우는 이런 말을 건네고 있다. 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 한심한 인간아. 너의 본질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배병우는 사진으로 말한다. 한 씨름 선수는 대표적인 국민 MC로 화려하게 변신했고, 대한민국의 인기 가수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버라이어티 쇼를 통해 얼굴을 알리며, 국회의원들은 정책을 논하는 것보다 힘쓰는 일에 더 능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존경했던 옛 시인은 어느 일간신문에 쌍욕에 가까운 육두문자를 퍼부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주객이 전도되고 본질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이 시대에 배병우는 사진을 통해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 한심한 인간아. 너의 본질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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