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정철훈] 백년간의 침묵 기사의 사진

스웨덴 한림원은 매년 10월 둘째주 목요일에 발표하는 관행을 깨고 2005년엔 일주일 늦은 10월 13일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영예의 주인공은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였지만 당시 BBC, 더 타임스 등 영국 언론들은 수상자 발표가 늦어진 데 대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후보로 올라간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을 두고 한림원 심사위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파묵이 터키 국내에서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일부 위원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파묵은 그해 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쿠르드인 3만명과 아르메니아인 100만명을 학살했지만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터키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국가정체성 부인 및 이미지 훼손'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였다. 망각의 위기에 빠진 터키의 역사를 작품으로 재구성해온 파묵의 작가적 양심은 터키 내부에서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된 터부를 깨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파묵은 이듬해인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우리는 외신을 통해 100년 가까이 반목해온 터키와 아르메니아가 극적으로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뉴스가 전파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이렇듯 백년 동안의 침묵이 땅에서 막 캐낸 문화재처럼 이끼를 뒤집어쓴 채 발굴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반목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 제국이 독립을 요구하는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 150만명(추정)을 학살한 사건이 발단이다. 아르메니아는 오스만 제국을 승계한 터키 정부가 대학살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터키는 이 사건을 1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양국 국민 간의 단순충돌 사건이라고 그 의미를 축소해 왔지만 EU 가입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적 양심은 터키 정부의 현실적 선택에 선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파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혹은 돌아오지 않는 것들에 대한 오랜 응시를 통해 양심을 키워나간 작가다.

우리에게도 1937년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자행된 재소한인 강제이주라는 아픈 기억이 있다. 비밀해제된 극비문서 '극동 국경지대 한인들의 추방에 관하여' 하단에는 몰로토프(소련인민위원 대표자회의 의장)와 스탈린(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서기장)의 사인이 선명하다. 1937년 8월 21일자로 작성된 이 문서 2항에는 '추방에 즉시 착수하여 1938년 1월 1일 전에 끝마치도록 한다'는 명령이 적혀 있다.

이 명령에 의해 약 18만명의 재소한인들이 그해 9월 초순부터 12월에 걸쳐 총 1800량의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실려갔다. 한 겨울 강추위에 대한 방편으로 차량 한가운데 드럼통 난로를 설치하고 바닥에 짚을 깔았을 뿐, 한 달 남짓의 긴 수송 기간 동안 수많은 한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1938년 이주 한인들에 대한 표본조사에 따르면 성인 1000명 중 42명이 사망했고 유아사망률은 1000명 중 200명에 달했다. 이 수치 역시 축소됐을 가능성이 높다. 문서 4항은 '이주당하는 자들이 남겨두고 가는 동산, 부동산, 파종된 종자들의 가격을 그들에게 보상한다'고 되어 있다.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상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역사 속 백년은 그리 긴 세월이 아니다. 작가라면 백년간의 침묵 앞에서 흩어진 민족의 기억을 수집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것, 잊고 싶은 부분들을 되살려내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숙고와 각성을 촉구하는 일은 작가의 사명이기도 하다. 2005년 5월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만났던 오르한 파묵이 "압박받은 것은 반드시 변화해서 돌아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문학관을 설명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 계절이다.

정철훈 인물팀장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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