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지만 당장은 수중에 돈이 없어도 되니까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에겐 그런 심리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카드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그토록 많겠죠.

10대 공기업의 부채가 2012년에 302조원으로 지금의 2배 수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지난 12일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사업성 10대 공기업 부채는 2008년 말 157조원으로 2007년에 비해 37조원 증가한 데 이어 2012년에는 무려 30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2007년에서 2012년까지 5년간 181조원이 폭증해 연 평균 36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입니다.

왜 이렇게 공기업 부채가 늘어날까요. 정부가 공기업한테 외상으로 사업을 떠넘기니까 그런 것입니다. 즉 돈이 없는 공기업한테 은행돈을 빌리거나 채권을 발행, 자금을 만들어 각종 사업을 벌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기업이나 공기업이나 자기 돈만으로 사업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문제는 차입금의 정도에 있습니다. 지나치게 차입을 많이 하면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공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좋아지면 괜찮겠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특히 공기업은 이윤만 추구하는 사기업과 달리 공익적 성격의 사업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좋기 어렵습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공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것입니다. 공기업은 대부분 독점적인 사업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수자원공사의 경우 물값, 즉 수도요금을 올리면 되고 한전은 전기요금을,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주택토지공사는 땅값을 올리면 됩니다. 결국 공기업의 부채는 제품 가격 인상을 통해 국민이 떠안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공기업이 채권을 많이 발행하면 채권금리가 올라 사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는 비용이 늘어납니다. 사기업의 비용 증가는 제품 가격에 반영돼 다시 국민 부담으로 귀결됩니다. 국민은 당장 내 주머니에서 세금이 덜 나가니까 좋아할 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공기업의 부채를 갚아나가야 하는 것이죠. 경제 정책은 그런 우회로가 많아 국민을 속이기 쉽습니다.

변재운 경제대기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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